해상교통로와 한미 동맹 - 김일영
	2004-07-22
해상교통로와 한미 동맹 석유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는 없다. 한국처럼 에너지의 수입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인 나라는 더욱 그렇다. 이 점에서 우리도 에너지 문제를 경제적 차원보다는 안보적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릴 때마다 정부는 소비절약, 공급선 다변화, 해외유전 개발, 대체에너지 개발 등 상투적인 처방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해상교통로(Sea Lanes of Communications·SLOC) 확보라는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다. 최근 이슬람 무장단체가 중동 노선을 운항하는 한국 해운회사 선박으로까지 테러를 확대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이 문제의 중요성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한국은 수출을 통해 발전한 나라이며, 무역의존도가 66%(2002년)에 달할 정도로 높다. 우리의 에너지 대외(특히 중동) 의존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96.9%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으며, 그중 47.6%를 차지하는 석유의 경우 79.5%를 중동에서 수입한다. 이러한 무역 물동량(物動量)과 에너지 자원의 운송은 거의 대부분 해상교통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와 국민은 생명선과도 같은 해상교통로 확보의 중요성을 별로 인식하지 않은 채 산다. 세계 석유 운송로 중 미국이 사활을 걸고 지키는 곳이 여섯 곳 있다. 페르시아만 입구의 호르무즈 해협,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말라카 해협,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수에즈 운하,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 그리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가 그것이다. 이 중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은 중동에서 한국으로 오는 원유 수송로상에 위치한 요충이다. 페르시아만을 떠난 유조선은 이 두 곳을 지나 필리핀과 대만 사이의 바시 해협을 거쳐 한국으로 온다. 그런데 이러한 운송로 중 어느 한 곳도 한국 해군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없다. 전적으로 미 해군의 보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페르시아만 인근의 한국 선박에 테러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취약한 곳은 말라카 해협이다. 이곳은 연간 5만척 이상의 선박이 지나다니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로 오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의 대부분이 운송되는 길이다. 하지만 폭이 2.4㎞밖에 안 되는 좁은 해로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해적이 들끓는 지역이다. 문제는 이 해협이 해적뿐 아니라 알 카에다나 그들과 연계된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테러조직인 제마 이슬라미야도 선박에 대한 테러 공격을 가하기에 용이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이곳에 이해관계가 걸린 주요 국가들은 근자 들어 말라카 해협에서의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호주와 싱가포르의 호응 속에서 이 지역의 테러 진압 노력에 대한 미군의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은 이 지역의 원유수송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인도 해군과 합동 해상훈련을 확대하고 있으며, 아세안 국가들과 한·중·일 3개국, 즉 ‘아세안+3’ 차원에서의 대(對)테러전 관련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비한다면 한국 정부의 노력은 싱가포르와 해군 교류의 확대를 모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리 해군력의 영향력이 근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지역 국가들과의 합동 해상훈련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상당 기간 우리의 원유수송로를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훼손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7.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