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정상회담 필요조건 - 정진영
	2004-07-15
南北정상회담 필요조건 남북정상회담 개최설이 정부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듯이 뭔가 막후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하는 상황이다.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가져올 엄청난 대내외적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정치권과 언론의 민감한 반응도 당연하다. 개최 시기나 장소에 관한 구체적인 추측들도 제기돼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15답방설부터 미국 대선 이전인 올해 9월이나 10월 중 개최될 것이라는 추측, 그리고 6·15 정상회담 5주년인 내년의 기념일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개최장소와 관련해서는 서울, 금강산, 제주도 또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 다양한 후보지들이 거명되고 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시기나 장소에 관한 이러한 추측들은 모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 또는 조건과 밀접히 관련돼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북핵문제가 종결되거나 최소한 ‘해결의 가닥’이라도 확실히 잡혀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최근 이 문제에 관해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북핵문제가 해결돼야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입장에서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남북정상회담을 열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조기개최 가능성이 점쳐지는 근거이기도 하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하여 북핵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의 입장이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미국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질 것이다. 국제적 압력을 통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좌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열리는 상황도 대선을 앞둔 미국의 현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음으로, 국내적 반대여론도 거셀 것이고, 정상회담의 성과를 확보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해결은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둘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려면 국내적 여건이 성숙돼야 한다. 특히 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루어지려면 국민 대다수가 그의 방문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그를 전범으로 체포해야 한다든지 기아상태에 빠진 북한주민은 외면한 채 대량살상무기나 개발하는 독재자라는 인식이 남한 사회에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는 한,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기는 어렵다.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전대표의 역할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나서서 보수층의 김 위원장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켜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셋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려면 뭔가 중요한 성과가 확보돼야 한다.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개최될 정상회담이 기대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끝난다면 국내외의 비판이 거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이 이룩해야 할 성과는 무엇보다도 남북한간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증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우선 2000년의 6·15 공동선언이 남북한간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의 증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핵문제가 제기된 지금의 상황도 군사안보 및 평화와 관련된 중대한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성과를 이룩하기는 쉽지 않다. 남북한간에 신뢰가 구축되고 주변 강대국들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될 때 남북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의 인기회복이나 반미·자주의 이념적 노선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남북정상회담이 기획되고 추진된다면, 국론분열은 심화될 것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정진영 (경희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7. 1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