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와 “하멜표류기” - 신일철
	2002-07-02
히딩크와 “하멜표류기” 한국과 화란 두 민족의 400년만의 끈질긴 인연 이번 월드컵은 온 세계에 다시 한번 코리아의 민족적 저력을 크게 과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태극기로 발현된 애국심의 용광로를 만든 4강등룡의 대축제에서 화란인 “히딩크”가 우리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뿌리깊은 우리의 제노포비아를 극복하는 극적계기가 되었다. 역시 글러벌 세계화시대의 상징적인 신한국의 길조이다. 불가에서는 온 세상만사가 모두 인연의 그물로 얽혀있다고 한다. 오늘의 월드컵의 한국과 화란이 별로 인연지울 건덕지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명예국민 증1호로 히딩크의 비상과 더불어 1653년 8월 16일 난파한 화란상선의 제주도 표류에서 비롯된 「하멜 표류기」가 언뜻 상기된다. 바로 내년이 제주도 표착 3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666년에 귀국하여, 제주도에 표류되었던 화란상선의 서기(書記) 하멜이 13년간의 억류생활에서 견문한 미지의 나라 “꼬레”(Coree)를 온 세계에 처음으로 크게 알렸다. 그 「하멜 표류기」의 화란어판(1668년), 불어번역판(1667년), 독어판(1667년), 영역판(1704년) 등을 헤아려 342년전에 코리아를 온 세계에 알린 것이 화란인이었다. 다시 21세기 오늘에 와서 화란인 히딩크가 한국축구 감독으로 와서 약진한국의 위용을 신세기에 다시 온 세계에 알리는데 큰 몫을 해주었으니 어찌 우연으로만 돌릴 수가 있겠는가. 하멜은 그의 귀국 보고에서 결코 “꼬레”는 미개국으로가 아닌 대단히 격조있는 문명을 가진 나라로 세계에 알렸다. 역시 해외무역의 상인정신을 가진 하멜은 조선의 문자, 숫자, 광산 등 자연자원을 소상히 소개했고 다만 조선에는 “상업부기”가 없다고 기록했다. 하멜일행이 표류되기에 앞서 와있던 역시 화란인 박연(朴淵), 화란명 벨트브레(Weltevere)와 하멜 일행은 체류중 병자호란후의 북벌론 분위기에서 서양식 대포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다. 박연으로부터 400년후 히딩크는 한국축구의 세계제패법을 전수한 것이 된다. 하멜일행을 심문할 때 먼저 와있던 박연이 통역을 한 것이다. 박연은 조선에 온지가 오래되어 우리말만 써서 화란어를 잊어버려 기억을 더듬어 겨우 통역을 했다고 한다. 이 심문에서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이 뱃사람들이 “남만국인”이라고 보고 “그대들은 선악을 아느냐” 물었는데 모두 그리스도교도로 선악을 안다고 대답했다. 이에 이원진은 조정에 이들이 천민이 아니고 남만국의 상층양반측이라고 보고했다. 17세기 “이양선”(異樣船)이 나타나면, 중화문명권에 속했던 조선왕국에서는 남쪽 변두리 오랑캐들이라고 보았다. 하멜일행은 오늘의 여수의 전라좌수영과 남원․순천 등 세곳에 분산 관리되었다. 군사기술을 가진 서양인이 청나라 사신의 눈에 띄면 인도해야 했기 때문에 조정은 이들을 전라좌수영에 숨긴 것이다. 이 화란선원들은 역시 장사에 능해 목화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큰배를 장만해 13년만에 일본, 나가사키항으로 탈주, 귀국했다. 처음 표류당시 64명 승무원중 36명이 생존․상륙했는데 그들은 13년간 조선옷을 입고 우리말을 익히고 조선여자와 결혼해 살며 자녀를 두었다. 1666년 8월 3일 생존자 16명중 8명이 탈주계획에 성공하고 나머지 8명에 대해 일본측이 나서서 인도교섭을 했는데 그중 한명은 조선의 처자를 버리고 떠날 수 없다고 귀국을 거부한 의리의 화란인 한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첫 탈주계획에 빠졌던 8명도 처자를 남기고 귀국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박연도 하멜일행도 모두 조선에 처자를 남겼으니 화란인의 피가 우리 속 어딘가에 흐르고 있을 것이다. 실로 우연은 자생적 질서가 만들어내는 필연이다. 히딩크도 하멜일행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환상을 가져 본다. 지난 월드컵때 화란 감독으로 0:5로 대패시킨 한국축구의 감독을 자원한 것이 무슨 인연때문이 아닐까 공상도 해보았다. 그 옛날 기어코 한국에 남기를 결단한 화란인의 이름은 “얀ㆍ그라센”이다. 한국과의 게임에서 패해 마음 아파하는 이탈리아도 우리와 인연이 깊다. 단재 신채호가 개화기 민족혼을 계몽하기 위해 「이태리 건국 3결전」을 역술하고 이순신 등 한국 역사 속의 국난극복의 3걸의 영웅전을 펴냈다. 한민족의 민족혼을 일깨운 개화기의 애국계몽에 이탈리아 건국정신이 표본이 되었다. 이 역시 두 민족간의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연의 이치로 세계를 바라보면 우리 모두 월드컵으로 정답게 손잡은 지구가족이다. 오늘의 제주도 남제주군 용머리 관광단지에는 그 표착지에 하멜상선을 재현한 바다비아호가 옛 모습을 드러냈다. 선원 60여명중 난파하여 30여명이 죽고 남은 36명의 화란선원이 상륙한 지점인 용머리에 이번에는 히딩크의 동상이 서게 되었다고 전한다. “골에 환호하는 히딩크” 다운 축구왕의 동상이 서게될 것이다. 히딩크 특유의 엎어캇 제스쳐로 만들어졌으면 더욱 좋겠다. 이미 1980년에 그곳에 ‘하멜표착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 히딩크를 붓잡아 우리 명예국민으로 길이 남게하고 싶은 것이 우리 국민의 마음이다. 그러나 탁월한 용병술을 여의주처럼 구사한 히딩크는 알고 있을 것이다. 명배우는 박수칠 때 퇴장해야 한다는 그때를 노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다해도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히딩크”의 이름은 하멜과 더불어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신 일 철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시민회의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