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반대’ 왜 윽박지르나 - 박효종
	2004-07-14
‘수도이전 반대’ 왜 윽박지르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됨에 따라 수도이전 절차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것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몫이 됐다. 헌재의 심리와 결정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수도이전 논란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수도이전 논란이 민주사회에서 있음직한 쟁점 사안의 논의에서 정상적 범위를 이탈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두 열차가 마주보며 질주함으로써 탈선의 파국에 직면하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수도이전 찬성자와 반대자들이 자신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아우성을 치는 것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민주사회란 정치적 쟁점이 발생하건 정책적 쟁점이 발생하건 쟁점 해결을 위한 독특한 절차를 가지고 있는 사회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또 상대방의 반론을 듣는다. 누구도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듯이 독선적 태도를 취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입장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경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밀어붙이고 폄훼한다면, 결투를 신청하고 총잡이의 기술로 쟁점을 해결하던 서구사회의 전통과 무엇이 다르며, 관점과 입장이 다른 상대방에게 사약을 내리던 조선시대의 정치적 관행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수도이전 문제의 어려운 점은 정부가 이 뜨거운 논란의 핵심 당사자가 돼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부가 의견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두 당사자 사이에서 조정역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상황이라면 정부는 더욱 더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되돌아보기보다 반대 의견을 공격하는 데 전력을 투구한다면, 정부의 ‘당파적’ 입장이 두드러지는 것이지 ‘공익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 개인들은 자신이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쉽게 수긍한다. 자신의 무오류성을 신봉하는 개인이 있다면, ‘천재’ 아니면 ‘사오정’일 것이다. 이처럼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불완전성을 토로하는 사람도 막상 집단에 속하게 되면 달라진다.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집단적 사고’는 집단의 무오류성을 신봉하도록 만든다. 구성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특정 가치관을 강화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한 집단 안에서 비판적 의견이 나온다면 ‘배반자’로 낙인찍힐 뿐, ‘우호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이 집단적 사고의 틀을 깨려면, 더 많이 듣고 더 적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정부가 수도이전에 대해 더 적게 듣고 더 많이 말한다면, ‘오버’하기 십상이다.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한 민주사회에는 세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억압하면 ‘다수의 횡포’가 된다. 또, 소수가 다수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독재’다. 마지막으로 수적으로 의견이 엇비슷한데 한 의견이 다른 의견을 억압하고자 한다면, ‘여론의 조작’이 되는 셈이다. 최근 정부의 태도에서 이 금기 사항을 깨뜨리려는 조짐이 엿보이지는 않는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면 ‘차이’를 인정할 뿐 ‘차별’을 해서는 안 되는데,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아집에 몰입돼 상대방에 대하여 논리로 대응하기보다 낙인을 찍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려면 ‘무지의 베일’을 쓰는 것이 어떨까.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의 제안으로 유명해진 ‘무지의 베일’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떠나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여론이 양분돼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지의 베일’을 쓴다면, 한국 사회에서 수도이전 논의는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관용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겠다는 ‘투지의 정신’을 불태우기보다 우리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상생의 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4. 7.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