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률이다. 산업계가 그동안 반대해온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형벌이 무거운 만큼 경영책임자가 꼭 지켜야만 하는 의무사항은 구체적일까. 무얼 어떻게 잘못하면 처벌을 받는지 범죄의 구성요건부터 모호하다.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안)에도 사업주의 의무내용이 불분명해 명확한 기준을 알기 어렵다. 정부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이 우려되는 이유다. 재해예방이라는 법 취지를 달성하면서 최선을 다한 경영자가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경총 등 36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가 공동으로 정부에 낸 건의문엔 절박함이 담겨 있다. 구구절절한 이들의 호소는 바로 현장의 목소리다. 법률을 만드는 정부와 국회가 재고해 주길 바라는 요지는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첫째, 직업성 질병의 범위에 중증의 기준을 분명히 해달라. 단기간에 회복되는 가벼운 질병이 중대한 재해로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을 위한 의무내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 중대한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각각 규정하면서 형사처벌의 해석을 어렵게 하는 ‘충실하게, 적정한, 적정규모’에 대한 문언은 바꾸든지 빼야 한다. ‘충실, 적정’이란 관념적일 뿐 기준이 모호한 용어라 법률가들도 늘 해석이 엇갈린다.
셋째, 안전 및 보건의 관계 법령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현장의 혼란을 막고 감독기관 마음대로의 법 집행을 막기 위해서다. ‘안전‧보건 관계 법령’은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적시하되, 종사자에 대한 중대산업재해법률인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한정해야 한다. 넷째, 불명확한 규정에 대한 시행령의 위임규정 마련이다. 법률의 내용만으론 ‘경영책임자’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기업에서 누구를 지칭하고 도급·운영·위탁 시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책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너의 존재가 분명한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은 경영책임자의 개념과 원청기업의 책임 범위도 불분명하다 보니 해석은 정부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내년 1월 27일부터 강제로 시행되는 이 법은 50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에 새로운 환경변수가 된다. 입법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검토와 논의가 충분했는가. 준비과정에서 이게 충분했더라면 산업계의 반발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현장에 대한 이해와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만들면서 모호한 내용과 과잉처벌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경제단체들이 시행령 제정안의 보완 외에도 법률의 재개정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재해를 예방하려는 법률의 실효성보다는 경영자나 사업주에게 주는 악영향이 더 클 것이다.
작년 한 해 산업현장 전체의 사고사망자는 882명. 이 가운데 95.8%는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해 사망사고가 다발하고 있는 중소규모의 기업은 지금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법 준수를 위해선 추가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로 많은 사업장이 곤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계상황에 처한 사업장도 부지기수다. 새로운 법을 시행하기에도 썩 좋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사망사고 발생 시 7년 이하의 징역형을 사업주에게 부과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형벌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기업의 책임만을 묻는 법을 서두르기보단 정책이 가져오게 될 파급효과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간의 빈번한 사고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규명해 왜 외국보다 사고사망만인율이 높은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진단이 나온다.
기업과 기업인은 경제의 중심이다. 세금으로 국가재정에 기여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근로자의 국민연금과 건보료,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 복지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업,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직원의 인건비와 금융비용, 주주 배당으로 나누는 도관을 만들고 이를 책임지는 기업인들이 잠재적인 범죄자인가.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새로운 법률은 시행에 앞서 재고할 게 많다. 취지가 좋더라도 무리한 입법은 기업하기 나쁜 환경을 만드는 규제가 된다. 이 법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다는 얘기다.
중대재해법, 이대로 시행해도 괜찮은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률이다. 산업계가 그동안 반대해온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형벌이 무거운 만큼 경영책임자가 꼭 지켜야만 하는 의무사항은 구체적일까. 무얼 어떻게 잘못하면 처벌을 받는지 범죄의 구성요건부터 모호하다.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안)에도 사업주의 의무내용이 불분명해 명확한 기준을 알기 어렵다. 정부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이 우려되는 이유다. 재해예방이라는 법 취지를 달성하면서 최선을 다한 경영자가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경총 등 36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가 공동으로 정부에 낸 건의문엔 절박함이 담겨 있다. 구구절절한 이들의 호소는 바로 현장의 목소리다. 법률을 만드는 정부와 국회가 재고해 주길 바라는 요지는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첫째, 직업성 질병의 범위에 중증의 기준을 분명히 해달라. 단기간에 회복되는 가벼운 질병이 중대한 재해로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을 위한 의무내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 중대한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각각 규정하면서 형사처벌의 해석을 어렵게 하는 ‘충실하게, 적정한, 적정규모’에 대한 문언은 바꾸든지 빼야 한다. ‘충실, 적정’이란 관념적일 뿐 기준이 모호한 용어라 법률가들도 늘 해석이 엇갈린다.
셋째, 안전 및 보건의 관계 법령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현장의 혼란을 막고 감독기관 마음대로의 법 집행을 막기 위해서다. ‘안전‧보건 관계 법령’은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적시하되, 종사자에 대한 중대산업재해법률인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한정해야 한다. 넷째, 불명확한 규정에 대한 시행령의 위임규정 마련이다. 법률의 내용만으론 ‘경영책임자’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기업에서 누구를 지칭하고 도급·운영·위탁 시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책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너의 존재가 분명한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은 경영책임자의 개념과 원청기업의 책임 범위도 불분명하다 보니 해석은 정부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내년 1월 27일부터 강제로 시행되는 이 법은 50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에 새로운 환경변수가 된다. 입법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검토와 논의가 충분했는가. 준비과정에서 이게 충분했더라면 산업계의 반발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현장에 대한 이해와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만들면서 모호한 내용과 과잉처벌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경제단체들이 시행령 제정안의 보완 외에도 법률의 재개정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재해를 예방하려는 법률의 실효성보다는 경영자나 사업주에게 주는 악영향이 더 클 것이다.
작년 한 해 산업현장 전체의 사고사망자는 882명. 이 가운데 95.8%는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해 사망사고가 다발하고 있는 중소규모의 기업은 지금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법 준수를 위해선 추가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로 많은 사업장이 곤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계상황에 처한 사업장도 부지기수다. 새로운 법을 시행하기에도 썩 좋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사망사고 발생 시 7년 이하의 징역형을 사업주에게 부과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형벌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기업의 책임만을 묻는 법을 서두르기보단 정책이 가져오게 될 파급효과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간의 빈번한 사고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규명해 왜 외국보다 사고사망만인율이 높은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진단이 나온다.
기업과 기업인은 경제의 중심이다. 세금으로 국가재정에 기여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근로자의 국민연금과 건보료,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 복지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업,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직원의 인건비와 금융비용, 주주 배당으로 나누는 도관을 만들고 이를 책임지는 기업인들이 잠재적인 범죄자인가.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새로운 법률은 시행에 앞서 재고할 게 많다. 취지가 좋더라도 무리한 입법은 기업하기 나쁜 환경을 만드는 규제가 된다. 이 법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다는 얘기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 e대한경제 2021. 9.27[칼럼]
<원문>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9231717222260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