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反戰수업을 위하여 - 박효종
	2004-07-07
온전한 反戰수업을 위하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최근 김선일씨 추모 기간을 정하고 반전·평화를 주제로 ‘계기수업’을 시작했다. 교사가 학생에게 특정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전국적으로 수업하는 것은 지난해 이라크전쟁과 관련한 반전수업에 이어 두 번째다. 전교조 소속교사들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무참하게 숨진 김씨의 문제를 계기로 이와 관련된 각종 국제 정치·사회적 현안들을 수업 내용으로 삼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이의를 달 의도는 없다. 각종 매스컴 보도로 말미암아 초·중·고 학생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번 전교조의 계기수업 자료를 보면서 우려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추가파병 중단 및 재검토를 요구하는 여야 국회의원 결의문은 실려 있지만, 파병을 결정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료는 눈에 띄지 않는다. 또 미국이 벌인 ‘더러운 전쟁’과 한국정부의 파병방침 때문에 김씨가 죽게 된 것이라는 일방적 주장이 뚜렷하다. 전교조 대변인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군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모두가 다 공개된 자료인데 어째서 한쪽 자료만 구하기 어렵고 또 다른 자료는 쉽다는 말인가. 이를 토대로 수업이 진행될 경우 학생들에게 파병은 부당하다는 편향된 인식을 심어주지는 않을까. 또 반전·평화수업이 반미수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없을까. 물론 학생들의 상태를 존 로크의 말처럼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백지상태’라고 단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스폰지’와 같은 상태로 선생님의 말과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균형감이 결여된 자료로 말미암아 학생들이 파병반대와 반미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파병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국론 분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팽팽하게 찬반이 맞섰던 문제이다. 파병을 찬성했던 사람들이나 반대했던 사람들 모두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사람들이다. 다만 국익을 어떻게 조망하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견해가 엇갈렸던 것이다. 이런 문제에서 가치판단을 내린다면, 어느 견해는 옳고 다른 견해는 그르다는 관점이 아니라 두 견해 모두 옳다는 관점이어야 한다. 즉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와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양시론(兩是論)과 같은 논리는 결코 모순어법이 아니다. 특히 김씨 피살을 계기로 새롭게 전개되는 이라크 추가파병 찬반 논의를 보면서 사르트르가 생각난다. 나치스의 프랑스 점령 중 어떤 젊은이가 사르트르를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늙은 노모를 봉양할 것인가. 그 젊은이에게는 이 문제가 딜레마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사르트르는 어떤 선택을 해도 옳다고 말했다. 지금 파병 찬반 양론도 그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전교조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한다면, 특히 양시론과 같은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균형감각을 길러 주는 일이 시민교육의 급선무가 아닐까. 이미 파병반대는 전교조의 공식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병반대로 편향된 자료를 근거로 수업하는 것은 “자기 논에 물을 대는 행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본의적 의미의 평화·반전수업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인륜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테러행위의 문제점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테러행위에 대한 비판 없이 파병반대나 반미로 일관한다면, 그것도 정서적으로 예민해 있는 학생들에게 이성적이 아닌 감성적인 접근을 한다면, 교육의 정도가 아니다. 반전·평화수업을 진행하는 전교조 교사들은 이번 계기수업이 ‘교화’나 ‘의식화 교육’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실천을 통하여 입증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 정치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4. 7. 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