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권리찾기’시작하자 - 남승희
	2004-06-27
‘학부모 권리찾기’시작하자 대전의 몇몇 고등학교가 말 많고 탈 많은 ‘야간 자율학습’ 논란을 잘 극복하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야간 자율학습의 감독자로 참여하면서 야간 자율학습비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됐고, ‘아빠, 엄마’가 감독하면서 면학 분위기가 좋아진 것은 물론 교사와 상담할 기회도 많아져 일거양득이라고 한다. 학부모들은 학교 일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학교를 이해하고 교사들의 고충도 알게 됐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다. 학부모들도 처음에는 자기 자녀에게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참여 횟수가 거듭되면서 다른 학생들과의 관계도 중시하게 되고 학부모들끼리의 관계도 한층 돈독해졌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담임교사를 교체해 달라는 집단의사를 나타내기도 하고, 학교 운영에 대해서 학부모와 교사들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일이 발생한다. 학부모들은 학교와 교사의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고, 교사들은 교권이 도전받고 있다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학부모는 누구인가? 학부모는 교육의 의무를 진 주체다. 교육의 의무는 학생의 ‘교육 받을 권리’에 대응해 그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적 개념이다. 이는 법률이 정한 일정한 교육에 대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지운 의무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학부모가 보호하고 있는 자녀에 대해 지는 의무다.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진 학생을 중심으로 학부모·교사·정부 등 교육 주체들이 있고, 이들 교육 주체들은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상호 협력의 관계를 갖는다. 이것이 공교육의 이념이고, 교육 주체들의 권리와 의무를 바르게 보장하는 것이 공교육의 이념을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교육 주체들 간의 갈등은 이들 간의 교육권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교사의 권리는 법률에 규정돼 있지만 학부모의 권리는 보통의 학부모와는 거리가 멀다. 교육과정의 운영 방법과 교과용 도서나 교육자료 선정 등에 대해서 학교에 건의하거나 의견을 진술할 권리가 있지만 이런 권리를 행사하는 학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학부모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또 있다. 학교교육에 관한 제도를 수립·검토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학생의 교육 받을 권리 보장인데, 아무리 학습자 중심이라고 하더라도 ‘비전문가’인 학생이나 학부모가 참여하는 것은 학생의 교육 받을 권리를 내용적으로나 전문적으로 보장하기가 어렵다는 시각 때문이다. ‘전문가’인 교사가 선택하는 것이 학생의 올바른 교육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이 교육의 전문성이고 교육행정의 전문성이라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교사의 전문성은 신장되고 보장돼야 한다. 수업 혁신과 학교 개혁은 교사의 전문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교 내부로부터의 개혁도 지역사회의 지지나 정부의 행정적 지원을 얻지 못하면 지속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부모의 동참이나 관심 그리고 신뢰를 얻지 못하면 학교는 학부모라는 ‘상생의 파트너’이자 ‘존재의 의미’를 학원이나 과외시장, 심지어 다른 나라의 학교라는 경쟁자에게 빼앗기고 외로운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사들은 학생이나 학부모의 권리보다 자신들의 권리를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교육활동에 의견을 제시할 권리’(13.4%)나 ‘정규 교과 외 교육 활동을 선택할 권리’(21.3%) 등 학부모 관련 권리 항목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의식이 교사 자신의 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학부모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확보할 당당한 교육 주체이고 당사자들이다. 학부모를 교육이나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학부모의 왜곡되고 이중적인 교육관을 바로잡겠다며 나서기보다는 학부모들이 교육 혁신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학교를 살리는 일이다. 앞으로 학교장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의 발길을 학교로 향하게 하느냐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교육감이나 교육부총리도 학부모의 지지 없이는 훌륭한 교육행정가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것이다. 학부모의 권리찾기 논의를 시작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사회교육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6. 2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