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 대수술 필요하다 - 정진영
	2004-06-27
정보기관 대수술 필요하다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한국군의 추가파병과 맞물려 앞으로 상당 기간 온 국민의 관심과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고위 관리 몇 사람을 옷벗기는 정도로 끝낸다면 이런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한국 대외전략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개선을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첫째, 해외 정보력 부재의 문제이다. 이라크에서 이런 종류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개연성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라크 내부 사정에 얼마나 어두웠는지는 김씨 피랍을 둘러싼 일련의 의혹들이 역설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씨의 피랍 시점, 정부의 인지 여부, 알 카르자위와 그의 단체의 성격, 인질 협상의 통로와 방법, 피랍 후 김씨의 상황 등 모든 관련 문제에 우리 정부는 거의 무지했다. 그 결과 김씨가 일했던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말 바꾸기에 놀아나고, 알 자지라와 같은 방송매체에 매달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되고 자주적 외교노선을 갈망하는 나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심각한 대외 교섭력 부재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인질범들과 협상을 시작해 보지도 못했다. 이것이 차라리 테러단체와는 절대로 협상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이 낳은 결과라면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테러집단과의 협상을 위해 서둘러 협상단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던 정부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누구와 어떻게 협상해야 할지도 몰랐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김씨가 피살된 이후에도 대통령에게 희망적인 보고를 한 사실은 부끄럽고 무책임한 일이다. 그런데 테러범들과 협상을 시작했다한들 우리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셋째,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과 정부의 대응을 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일관된 대외전략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추진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김씨피랍사건은 한국군의 추가파병과 연관성이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라크 테러단체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을 인질로 잡고 있는 현실과 우리의 추가파병이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난 이후에 이번 사건을 공개한 점은 두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케 한다. 그러나 김씨의 피살을 한국군 철수와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김씨의 피랍·피살사건이 한국군의 추가파병을 둘러싼 찬반논란의 근거로 악용돼서는 곤란하다.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국론만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상치 못하고 파병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파병 등 대외정책을 바꾸려 든다면 우리는 앞으로 대외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의 대외정보 능력을 대폭 강화해 중요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데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중동 국가들은 교역량과 건설 인프라 사업 등 우리의 경제적 이해와 직결된 지역이다. 특히 자이툰 부대의 파병으로 우리 군대에 직접 위해를 가할 만한 요소는 도처에 깔려 있다.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김씨가 피랍된 지 20여일 동안 우리 정보 채널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 정보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해외정보 수집과 분석, 대외교섭, 대외전략 추진 능력 전반에 걸쳐 대수술과 함께 획기적인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관계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6.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