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설익은 정부 노조법案 이대론 안 된다- 양준모
2020-11-08

설익은 정부 노조법案 이대론 안 된다



최근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의 비준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노동계는 이 개정안이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되면 총파업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경영계도 정부의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야당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노조법이 필요하다면서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가 설익은 개정안을 내놓다 보니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우선, 정부안(案)은 야당의 주장처럼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경제 및 노사관계의 변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정부가 현안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대책은 생각하지도 못한 것 같다. 국민은 공직사회와 교직사회가 기득권을 챙기는 모습만 보게 됐다. 결사의 자유가 소중하다면 그동안 사회가 보호했던 기득권도 내려놔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안은 해고자와 실업자 등 회사의 발전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도 노조에 참여하고, 노조 전임자는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회사가 망해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포함된 결사체는 기본적으로 회사와 무관하다. 이러한 결사체가 회사의 시설을 사용하거나 점거하는 것은 무슨 행위를 하든 그 자체로 불법이다. 더욱이 회사와 관련 없는 결사체를 위해 일하는 전임자에게 월급을 줄 이유도 없다. 이번 개정안은 결사의 자유에 따른 합리적 규정은 배제하고 불합리한 혜택만 규정하고 있다.



끝으로, 정부안에는 노사 간의 협상 시 평등한 조건을 만들어 노사관계의 합리적 발전을 유도하는 방안이 없다. 동등한 협상력을 위해서는 폭력적 노동쟁의를 금지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사회적 비용도 줄이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길이다. 사용자는 엄격한 잣대로 형사처벌하고 근로자는 어떤 행위를 해도 용인한다면 노사 간의 합리적 협력은 불가능하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5년으로 더 연장해 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자들도 고용 비용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적된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노조법 정부 개정안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과잉보호와 불합리한 규제로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적 파괴 과정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합리적 노사관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ILO 협약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조법의 체계적인 정비다. 표준화된 업무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노사관계의 정비도 빠질 수 없다.



우리나라는 ILO의 189개 협약 중 29개의 협약을 비준했다. ILO의 협약이 정말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미국은 14개 협약만을 비준했다. ILO 협약들이 우리의 노사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 협약들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려 근로자의 삶만 고달프게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어느 때보다 미래를 위한 설득력 있는 노조법 개정이 절실하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출처- 문화일보 2020. 11.6[칼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10601073111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