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갈등 국민투표로 풀자 - 류동길
	2004-06-20
수도이전 갈등 국민투표로 풀자 ‘천년을 가리라, 다시 만년을 가리라.’ 조선조 초 정도전(鄭道傳)은 이렇게 서울을 읊었는데 그 서울의 운명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행정수도 후보지가 발표되면서 찬반 공방이 열기를 띠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성사를 다짐했지만, 중앙정부와 각 시·도 간 대립이 표면화하면서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투표 공약은 이미 종결된 문제이며, 모든 건 국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될 조짐이다. 아무리 봐도 수도 이전, 다시 말해 천도(遷都)인데 행정수도 이전이라고 한다. 청와대와 행정부처는 물론 헌법상 독립된 입법부와 사법부, 헌법재판소까지 옮기는 게 천도가 아니라면 무엇이 천도인가. 충청권 공략 카드로 ‘재미 좀 본’ 이 문제는 처음부터 갈등과 대립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수도를 옮겨야 한다면 마땅한 곳을 찾는 게 순서다. 충청권으로 미리 정한 것부터 문제는 잘못된 것이다. 공약이란 게 대체로 앞뒤 안 따지고 발표부터 한다. 그리고 이를 기정사실화해서 밀어붙인다. 말썽 많은 새만금사업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17대 총선을 앞두고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국회 차원의 공청회 한 번 없이 졸속 처리됐다. 야당은 충청표를 얻겠다고 자충수를 두었다.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재미봤고 법안의 국회 통과는 국민의 합의라고 한다. 그럴 듯한 것 같지만 탄핵 때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국회 결의는 무효’라고 외치던 사람들의 주장이라 어쩐지 썰렁하다. 노 대통령은 대선 직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당선 후 1년 이내에 국민투표로 최종 결정하겠습니다”(2002. 12. 14, KBS TV)라고 분명히 말했다.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이 공약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리고 건설비가 4조~6조원에서 45조원으로 늘어난 데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불리한 건 감추고 유리한 건 내세우는 억지다. 노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국가의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는 수도 이전은 국민적 합의와 강력한 뒷받침이 없으면 어려우므로 반드시 국민 합의를 거치겠다”(2003. 1. 18, KBS TV 노무현 당선자와 함께)고 했다. 대통령 취임후 “천도는 한 시대와 지배 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런 큰 변화를 국민이 선택했고 그래서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2004. 1. 29, 지방화시대 선포식) “남북연합단계가 되면 개성이나 판문점에 통일수도가 만들어질 것이고, 행정수도 이전은 천도가 아니다”(2004. 2. 24, 방송기자클럽회견)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의 김안제 민간위원장은 “입법부·사법부까지 옮기면 천도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 건설 비용은 각종 대형 국책사업의 건설비가 당초 예상보다 몇 배씩 늘어났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늘어날 가능성은 분명하다. 정부 예산에서 부담하는 돈은 11조원밖에 안 된다고 한다. 민간 돈이든 정부 예산이든 우리 국민이 부담할 돈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이런 계산을 하고 있다.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의 매각도 어려운 일이지만 통일후 서울을 수도로 한다면 그 때 가서 환매(還買)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수도 건설을 시작하는 2007년 하반기에는 다음 대통령을 선출한다. 수도 건설이 마무리되는 2030년까지 모두 다섯 명의 대통령이 바뀐다. 그동안 통일이 가시화된다면 또 어쩔 것인가. 행정수도 이전에 정부는 명운과 진퇴를 걸겠다고 하지만, 다음 정부가 명운과 진퇴를 걸고 반대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문제로 더 이상 찬반 공방이 일지 않도록 국민투표를 하자. 그게 모든 갈등과 찬반 논쟁을 봉합하는 길이다. 반대 목소리를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공세라고 치부할 일은 더욱 아니다. 수도 이전이야말로 특정 집단, 특정 지역 주민이 아닌 모든 국민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닌가.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6. 1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