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委 제역할 했나 - 김태기
	2004-06-17
노사정委 제역할 했나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사 대표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중소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노사정 지도자들의 역할에 상당한 기대를 보였다. 민주노총이 5년만에 노사정간의 공식적인 회의 테이블에 복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노사 문제의 해결에 대해서 희망을 느낄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대통령의 의욕과 멀어져가는 것같다. 대통령은 토론회를 주재하면서 그 자리가 적어도 금년도 노사관계의 안정에 기여하리라 기대했을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는 병원산업 노동조합은 지난 주 파업에 들어간 뒤 아직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금속과 택시 노조도 파업에 가세하고 있다. 마치 노사정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댄 적이 있었느냐는 듯한 분위기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사정 지도자들이 만난다는 것은 노동계도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노동계의 요구나 입장만을 관철하는 자리가 될 수는 없다. 일반 국민들이 경제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고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중소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계도 상당히 양보를 해야만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노동조합의 힘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힘은 대기업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의 개선에 따른 부담은 하청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노동조합의 힘이 강화될수록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생활은 어려워지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대통령이 생각하듯이 노사정위원회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성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노동계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계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 역시 자연스로운 일이다. 그러나 대기업과 정규직 근로자가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면 노동계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노동 문제는 노사갈등 문제의 차원에서 빈부격차 문제의 차원으로 악화되고 있다. 빠른 시일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 성장은 물론 사회 발전의 기반마저 흔들리게 될 상황에 와 있다. 사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원회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공공의 이익이 노사간의 이해관계 조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강화함으로써 노동 문제를 해결하려면 행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 문제는 노동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며 공정거래 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노동계와 재계가 합의의 당사자로 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국회와 사법부도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노동 문제가 사회적 갈등에 속하고 제도적 개선을 필요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법을 제정하는 국회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국회가 제대로 일한다면 노사정위원회의 기능을 상당 부분 맡아야 할 것이다. 또한, 법 질서가 혼란에 빠져 노사간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고 있었지만 사법부가 나서서 법의 적용과 집행에 대한 원칙을 수립하고 노사가 이를 따르도록 만들지 못했다. 노사 자율 해결이 최선의 해법이지만 최근의 잇단 파업사태를 직시할 때, 특히 공공의 이익과 관련해서, 이제는 정부가 제대로 일할 때다. 대통령은 파업사태 장기화에서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사후적이나마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당면 과제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6. 1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