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적 균형 필요하다 - 박효종
	2004-06-17
반성적 균형 필요하다 한국언론학회가 방송위원회에 낸 탄핵방송 관련 보고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방송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TV 보도의 공정성 여부를 분석한 한국언론학회가 “아무리 느슨한 적용을 해도 공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자 방송사들이 반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 탄핵정국은 헌정사상 초유사태여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논란의 한 중심에 서 있던 탄핵방송이 사후 평가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하다. 일은 끝났지만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편파적이었다”는 평가에 대해 방송사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인지상정의 일단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지상파 TV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제3자의 비판과 쓴 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개인이 잘못할 수 없다는 ‘무오류성’ 명제에는 쉽게 부정한다. 이 문제는 개인들이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뼈저리게 체험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판단의 착오, 시행착오, 과잉행위가 벌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집단의 경우는 다르다. 집단의 경우는 구성원 개인들이 상호간에 소신과 가치관을 강화해 주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집단적 사고’의 결과이다. 방송사들의 입장에서는 항상 거울을 바라 보며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공정한 보도를 하고 있지?”하며 묻고 “방송사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외부의 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집단적 사고의 틀을 깨려면 자신의 잣대보다 외부 비판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 볼줄 알아야 한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방송보도 공정성의 개념에 있다. 보도의 공정성은 어디에 있는가. 원론적으로 볼 때 여론의 지지도가 보도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반론이 틀린 것은 아니며 양적 균형이 만능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수의 횡포’ 사태를 피해야 한다는 J. S. 밀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밀은 “한사람이 다수를 억압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다수나 다수의 여론이 소수나 소수의 생각을 억압하는 것도 똑같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에서 방송사들이 반성하며 자책할 부분은 과연 없는가. 또 하나의 문제는 절차적 공정성이다. 우리는 실질적 문제에 대해 합의하기 어렵다. 개인에게 ‘정의감’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마다 실질적 사안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차 문제에 대해 합의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특성이다. 이번 방송위가 합의된 의견으로 평가를 언론학회에 의뢰해 놓고 막상 결과가 나오자 일부 인사가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반발하는 의견을 밝힌 것은 절차적 공정성을 위배한 것이다. 그런 문제 제기는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모습이며, ‘자기 논에 물을 대려는’ 자기 중심적 태도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적 균형’도 아니고 ‘질적 균형’도 아니며 ‘반성적 균형’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다시 외부로부터의 비판과 의견을 받아들여 그 원래의 생각을 수정하고 고쳐 나가며 또 이 과정을 반복하여 끊임없이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반성적 균형의 요체다. 반성적 균형은 ‘생각의 넓이’와 ‘생각의 깊이’를 풍요하게 하기 위해 요청된다. 방송사들이 ‘기계적 균형’이냐, ‘질적 균형’이냐 하는 문제로 한국언론학회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스스로 ‘반성적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4. 6. 1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