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 여자들 눈 예쁜 거 처음 알았다. 지긋한데 예민하고 깊으면서도 경쾌하다. 마스크의 물결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게 무슬림 여성이다. 죄다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눈만은 어쩔 수 없이 예외다. 그러다 보니 눈 화장이 예술의 경지다. 코로나 사태가 고착되면 우리도 눈에만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뒤집어쓰고 다닌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가리는' 것이다. 쿠란은 이렇게 가르친다. 남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부위를 가려라. 그래서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 차도르, 니캅 같은 이름으로 다채롭게 가리고 다닌다. 자극을 줄 수 있는 부위에 눈까지 포함한 게 부르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한 통이다. 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입는데 눈 부분은 시야 확보를 위해 망사 처리했다.
이들이 부르카를 입는 이유는 남편 말고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카는 명예와 직결된 문제다. 몇 년 전 아프가니스탄 여성 앵커가 부르카를 벗고 방송했다가 명예 살인을 당했다. 그녀를 죽인 것은 가족이었다. 그럼 아내들은 명예라는 말에 합당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별로 그렇지가 못하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15세 정도부터 시집을 가는데 신랑의 나이는 대체로 두세 배가 많다. 남편은 아내들을 이름 대신 '검은 머리들'이라고 부른다. 호칭이 대접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형용사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서글프고, 어이없고, 복잡하고 최종적으로는 가난한 땅이다. 가난한 나라의 1차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1970년대 말부터 전쟁과 내전의 악순환으로 역사를 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1978년 좌익 군인들이 공산 정권을 수립하자 반군 게릴라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이 들고일어난다.
이듬해 소련군이 친소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출동하지만 소련판 베트남 전쟁이라는 오명을 들으며 1989년 철수한다. 당시 무자헤딘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한 게 미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사 모집을 담당했고 파키스탄은 이들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훈련을 담당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만든 조직이 알 카에다이다. 소련 철군 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다. 이들은 공포정치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특히 여성들을 못살게 굴었는데 학교에서 쫓아냈고, 하이힐을 신거나 화장이 짙으면 때렸으며, 부르카를 씌웠다.
전쟁이 끝나자 무자헤딘은 실업자가 된다. 출구를 열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군 주둔을 허용한 것이다. 1400년 전 메카를 점령한 무함마드의 일성이 향후 이교도 절대 출입 금지였다. 이슬람 성지에 기독교 국가 군대가 들어온다는 것은 아랍의 수치였다. 무함마드의 경고를 오사마 빈 라덴이 실행한다. 반미성전(反美聖戰)을 슬로건으로 알 카에다는 테러를 개시했고 미국은 다량 미사일로 답했으며 이에 대한 보복이 9·11 테러였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19년 만인 올해 2월 평화협정이 이루어졌지만 순서에 따라 이제 내전이 개막할 차례다.
이쯤 되면 아프가니스탄이 평탄하게 가난한 게 아니라 피에 젖으며 빈곤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짐작하실 수 있겠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 두 영화가 고맙다. '찰리 윌슨의 전쟁'(2007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폭탄을 초콜릿으로 위장해 아이들 손을 날려버리는 소련에 분노한 미국 하원 의원이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다는 것과 미국이 천사로 나온다는 것 말고는 단점이 거의 없다.
'칸다하르'(2002년)는 캐나다로 탈출했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기자가 동생을 찾아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 땅 풍경이, 사람들 사는 모습 자체가 내용이다. 첫 장면부터 충격이다. 구호 단체에서 보내는 의족이 낙하산에 실려 떨어지는 순간 목발을 짚은 남자들이 그걸 차지하겠다며 일제히 낙하지점으로 달린다. 다리가 멀쩡한 사람은 팔이 부족하고 팔이 둘인 사람은 다리가 홀수다. 미, 소, 정부군, 반군이 씨 뿌리듯 심어놓은 지뢰 때문이다. 이들의 질주는 눈물겹다. 혹자는 아직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정을 아는 사람은 고개를 젓는다. 그들에게 좋은 날이 오기에는 지구의 남은 생애가 다소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義足이 낙하하는 순간, 목발 부상자들 쟁탈전이 시작된다
'찰리 윌슨의 전쟁'·'칸다하르'
마스크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 여자들 눈 예쁜 거 처음 알았다. 지긋한데 예민하고 깊으면서도 경쾌하다. 마스크의 물결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게 무슬림 여성이다. 죄다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눈만은 어쩔 수 없이 예외다. 그러다 보니 눈 화장이 예술의 경지다. 코로나 사태가 고착되면 우리도 눈에만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뒤집어쓰고 다닌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가리는' 것이다. 쿠란은 이렇게 가르친다. 남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부위를 가려라. 그래서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 차도르, 니캅 같은 이름으로 다채롭게 가리고 다닌다. 자극을 줄 수 있는 부위에 눈까지 포함한 게 부르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한 통이다. 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입는데 눈 부분은 시야 확보를 위해 망사 처리했다.
이들이 부르카를 입는 이유는 남편 말고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카는 명예와 직결된 문제다. 몇 년 전 아프가니스탄 여성 앵커가 부르카를 벗고 방송했다가 명예 살인을 당했다. 그녀를 죽인 것은 가족이었다. 그럼 아내들은 명예라는 말에 합당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별로 그렇지가 못하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15세 정도부터 시집을 가는데 신랑의 나이는 대체로 두세 배가 많다. 남편은 아내들을 이름 대신 '검은 머리들'이라고 부른다. 호칭이 대접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형용사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서글프고, 어이없고, 복잡하고 최종적으로는 가난한 땅이다. 가난한 나라의 1차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1970년대 말부터 전쟁과 내전의 악순환으로 역사를 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1978년 좌익 군인들이 공산 정권을 수립하자 반군 게릴라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이 들고일어난다.
이듬해 소련군이 친소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출동하지만 소련판 베트남 전쟁이라는 오명을 들으며 1989년 철수한다. 당시 무자헤딘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한 게 미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사 모집을 담당했고 파키스탄은 이들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훈련을 담당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만든 조직이 알 카에다이다. 소련 철군 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다. 이들은 공포정치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특히 여성들을 못살게 굴었는데 학교에서 쫓아냈고, 하이힐을 신거나 화장이 짙으면 때렸으며, 부르카를 씌웠다.
전쟁이 끝나자 무자헤딘은 실업자가 된다. 출구를 열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군 주둔을 허용한 것이다. 1400년 전 메카를 점령한 무함마드의 일성이 향후 이교도 절대 출입 금지였다. 이슬람 성지에 기독교 국가 군대가 들어온다는 것은 아랍의 수치였다. 무함마드의 경고를 오사마 빈 라덴이 실행한다. 반미성전(反美聖戰)을 슬로건으로 알 카에다는 테러를 개시했고 미국은 다량 미사일로 답했으며 이에 대한 보복이 9·11 테러였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19년 만인 올해 2월 평화협정이 이루어졌지만 순서에 따라 이제 내전이 개막할 차례다.
이쯤 되면 아프가니스탄이 평탄하게 가난한 게 아니라 피에 젖으며 빈곤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짐작하실 수 있겠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 두 영화가 고맙다. '찰리 윌슨의 전쟁'(2007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폭탄을 초콜릿으로 위장해 아이들 손을 날려버리는 소련에 분노한 미국 하원 의원이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다는 것과 미국이 천사로 나온다는 것 말고는 단점이 거의 없다.
'칸다하르'(2002년)는 캐나다로 탈출했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기자가 동생을 찾아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 땅 풍경이, 사람들 사는 모습 자체가 내용이다. 첫 장면부터 충격이다. 구호 단체에서 보내는 의족이 낙하산에 실려 떨어지는 순간 목발을 짚은 남자들이 그걸 차지하겠다며 일제히 낙하지점으로 달린다. 다리가 멀쩡한 사람은 팔이 부족하고 팔이 둘인 사람은 다리가 홀수다. 미, 소, 정부군, 반군이 씨 뿌리듯 심어놓은 지뢰 때문이다. 이들의 질주는 눈물겹다. 혹자는 아직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정을 아는 사람은 고개를 젓는다. 그들에게 좋은 날이 오기에는 지구의 남은 생애가 다소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남정욱 (작가)
출처- 조선일보 2020. 8.13[칼럼]
<원문>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3/2020081300063.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