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원가 공개’는 시장경제 역행 - 김정호
	2004-06-07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경제 역행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드세다. 궁극적인 목적은 분양업체가 원가에다가 ‘적정 이윤’을 더한 금액 이상 못 받게 하자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어긋난다. 어떤 물건의 가격은 그것의 가치를 반영해야지 원가를 반영해서는 안 된다. 독자 가운데 누군가가 부모로부터 공짜로 상속받은 땅을 매각하려고 할 경우, 원가를 공개하고 거기다가 적정 이윤만을 붙여서 팔아야 하는가? 그렇게는 해서도 안 되고 하지도 않는다. 취득 원가가 얼마든 주변 시세대로 팔릴 만한 가격을 책정해야 하고 또 매각인도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시장경제에 있어서 가격은 소비자와 공급자들에게 당해 물건이나 서비스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격은 원가가 아니라 팔릴 만한 수준에서 결정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가격이 인위적으로 규제를 당하게 되면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 초과수요 현상이 생기게 된다. 과거에 아파트 분양 때마다 몇 십 대 1일의 경쟁이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율화 이후 분양가는 팔릴 만한 수준에서 결정돼 왔으며 그런 의미에서 분양가 책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내세워 원가 공개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산 원가와 소비자의 알권리는 관계가 없다. 소비자의 알권리는 소비자가 속임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집을 살 때에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중요한 정보는 그 집의 위치와 주변 환경, 평수, 층수 같은 것들이다. 그런 정보들은 주택의 원가와 별로 관계가 없다. 대부분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분양업체가 속이기도 쉽지 않다. 물론 선분양 주택의 경우 본래 약속한 대로 자재들이 쓰였는지가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그것은 원가공개가 아니라 사용된 마감재의 내역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접근법이다. 원가는 소비자들이 주택의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뿐이다. 고쳐야 할 문제는 있다. 택지를 토지공사 등으로부터 시가보다 낮은 감정가로 분양받은 뒤, 그 위에 지은 아파트는 주변의 시세에 따라 시장가격으로 팔아 왔다. 그래서 주택업체들이 지난 몇 년간 지나치게 높은 이윤을 벌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파트를 시장가격으로 분양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토지공사가 택지를 시장가격이 아닌 감정가로 분양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해법도 토지공사가 주택공급 업체들에 경쟁입찰을 통해서 택지를 분양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주택업체들의 초과이윤은 사라지게 된다. 택지의 경쟁입찰을 통해서 만들어질 막대한 재원은 해당 지역의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데에 사용하거나 또는 국민기초생활 보장의 재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양가가 낮아진다고 해서 집값 전체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분양되는 주택은 전체 주택의 4~5%에 불과하다. 96~95%를 차지하는 중고주택의 가격은 개별 소유자 각자가 책정한다. 따라서 분양가가 전체 주택가격을 좌우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신규 주택 공급자들이 주변의 기존 주택 시세를 참고해서 분양주택의 가격을 책정해 왔기 때문이다. 분양가를 낮춰서 전반적 주택가격을 낮출 수 있다면 올림픽을 전후해서 집값이 폭등했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때는 분양가가 시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적도 있었다. 분양가 규제나 원가 공개는 신규주택의 공급을 줄여서 오히려 전체 주택의 평균적인 가격을 올릴 뿐이다. 주택시장 전체의 가격을 낮추려면 주택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택지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주택가격 문제에 대한 해법은 원가 공개나 분양가 규제가 아니라 획기적인 택지 공급의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분양가를 높게 받으라고 해도 낮게 받기를 택할 것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6. 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