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 保守 정당의 현실과 活路

지난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에 거의 더블 스코어로 참패했다. 워낙 경합지역이 많았던 터라 크고 작은 변수들이 모두 결과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언급되는 원인을 모두 합치면 84석도 기적처럼 보인다. 하나의 결과를 여러 개의 원인으로 설명할 때 흔히 일어나는 일로, 정신분석학과 분석철학 등에서 ‘과대설명(overdetermination)’이라고 부르는 오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오컴의 면도날’이다. 가장 단순한 설명이 가장 개연성이 큰 설명이다.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보면 통합당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은 처음부터 매우 작았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율은 15%포인트 정도의 차이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표를 보면 2월 마지막 주에는 격차가 줄어든 상태였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도 낮았고 정부지원론과 정부견제론이 균형을 이뤘다. 그래서 민주당에서도 제1당이 어렵다는 엄살 아닌 엄살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3월 이후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도 계속 높아졌고 정부지원론도 우세해졌다. 급기야 3월 마지막 주에 이르러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긍정 55%로 1년6개월 만에 최고치에 이르렀다. 정부지원론도 37%로 27%를 기록한 정부견제론을 10%포인트나 앞질렀다.

도대체 그새 무슨 일이 있었나? 가장 중요한 사건은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공천을 둘러싼 소동이었다. 공천은 정당이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다. 비호감도가 지지도를 크게 웃도는 정당으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이 기회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공천 파동은 유권자들에게 통합당이 2016년 새누리당에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확인시켰다. 일각에서는 이때 이미 통합당이 얻을 수 있는 최대 의석이 90석 이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공천 파동은 막무가내 통합의 결과물이다.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는 잊고 통합만 하면 지지가 올라간다고 밀어붙였다. 유권자들이 그냥 따라올 것으로 생각한 건 오만 그 자체였다. 통합 후에도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았다. 반면 이들을 옥석도 가리지 않고 배려하느라, 열심히 활동해온 사람들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지지층에서도 등을 돌린 사람이 적잖았다.

리더십도 문제였다. 사천(私薦) 운운하지만, 공천위원회를 맡기면서 이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겉으로는 말끔하게 보이게 사전 조율을 하는 게 리더십이다. 당대표가 공천위원회의 결정을 공개리에 거부하고 법적으로는 엄연히 별개인 위성정당의 공천 결정을 모조리 뒤엎는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직권 남용에 가깝다. 보수 정당의 봉인에서 벗어났던 중도의 유권자들이 이런 난장판으로 돌아갈 리 없다.

선거공학적 통합과 거기서 파생한 공천 파동 및 선거 참패는 보수 정당이 진실로 변화해야 함을 일깨운다. 한국갤럽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부터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비슷하거나 많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이보다 크게 낮은 것은 지금의 상태에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달라져야 한다.

변화의 계기가 된다면 총선 참패는 불행을 가장한 행운일 수도 있다.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어떻게 유권자에게 다가갈 것인지, 어떻게 그들과 고통과 희망을 나눌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면, ‘옛것이 죽어가는 데도 새것이 자라나지 않는 것’이 진짜 위기다.

이영조 (경희대 교수·정치학)
출처- 문화일보 2020. 4.20[칼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42001073111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