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론의 虛實 - 사공일
	2004-06-07
경제위기론의 虛實 현 경제상황을 놓고 ‘위기’ 여부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불황(recession)이나 공황(depression)과 같이 경기(景氣) 상황을 말해주는 경제 전문용어가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쓰여진 일반 용어를 놓고 찬반논의를 벌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현황을 올바른 시각에서 정리해 보는 것은 유용하다고 본다. 우리 경제는 2001년에 7% 성장한 이후 작년에는 3.1%로 성장세가 크게 떨어졌다.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고려할 때 이것은 경기의 경착륙(硬着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국민소득 자료를 보면, 금년 1분기 중에는 작년 4분기의 성장률 3.9%를 크게 상회한 5.3% 성장한 것으로 추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기 회복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뿐 아니라 ‘경제 위기’ 운운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경제가 1997년 말에 겪었던 환란(換亂)과 같은 위기를 곧 맞게 된다든가, 마이너스 성장의 불황이나 심한 경착륙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현 경제상황은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러나 거시경제 지표가 말해주듯 경기 호전을 대다수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사실과 정부와 우리 국민 모두가 ‘위기 의식’을 갖고 함께 ‘경제 되살리기’에 매진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거시경제 통계에 나타난 ‘지수(指數) 경기’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소위 ‘피부 경기’와의 괴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지난번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조장해온 내수 진작 시책에 따라 가계부채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된 결과 우리 GDP(국내총생산)의 거의 55% 수준에 달하는 민간소비가 작년 2분기 이래 줄곧 전년 동기 대비로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나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시경제지표의 개선은 극히 제한된 IT 관련제품 등 일부제품의 전례 없는 수출 호조에 따른 것임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내수 관련 중소기업과 수출 위주의 대기업 간 경기 및 수익률 격차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할 때 경기회복에 관한 회의론이 제기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조업 부문의 평균 가동률이 80%를 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상 최저의 금리 수준과 비교적 풍부한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기업 설비투자가 작년 2분기 이래 전년 동기에 비해 줄곧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단기적 경기회복과 시급한 일자리 창출, 그리고 소득 2만달러 시대를 향한 지속성장 기반이 될 성장잠재력 배양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업 설비투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히 받아들인다면, 현 경제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노사 대화합 등 기업 친화적 여건 조성에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국민 모두가 합심 노력할 때이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4. 6. 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