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가 재편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HDC현대산업에 매각된 데 이어 지난 달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인수를 결정했다. ‘재팬 보이콧’으로 인한 여행객 급감, 환율 상승과 내수경기의 침체로 고전하는 항공업계에 코로나19까지 덮쳤다. 미국과 유럽지역의 여행경보속에 WHO의 팬데믹 선언으로서 중장거리 노선에 치중하던 대형 항공사들도 위기에 빠졌다. 극심한 불황 속에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까지 겹쳐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싸움은 예측불허다. 주총을 앞두고 사모펀드 KCGI와 반도건설이 손잡았고, ‘땅콩회항’으로 그룹의 위기를 촉발했던 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도 합류했다. 합종연횡의 3자 연합으로 한진칼의 최대주주는 37.08%를 보유한 KCGI의 대주주인 그레이스홀딩스로 바뀌었다. 조원태 회장과 나머지 가족, 기타 특수관계인의 보유지분을 모두 합해도 격차는 1% 안팎이다. 박빙의 승부다. 어느 쪽도 과반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위한 여론전까지 전개되고 있다. 경쟁적 환경에서 기업은 종종 M&A를 통해 생존과 성장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번 경영권 다툼에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큰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모펀드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투자기업의 가치를 높여 수익을 배분하는 합자회사 형태의 펀드다.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주식에 투자해 기업가치가 오르면 되팔아 이득을 남기는 것이 수익모델이다. 그동안 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들은 주주권익을 명분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막대한 차익을 챙겨 떠났다. 소버린은 SK의 지배구조와 경영진 교체(2003)로 약 90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고,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매각(2003년)으로 약 2조원의 이익을 챙겼다. KT&G를 인수한 칼아이칸은 자회사의 매각(2005년)으로 약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2016년 삼성전자의 주식 분할 당시 30조원의 특별 현금배당을 요구하고, 재작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반대하면서 경영권을 요구했던 엘리엇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작년 말 주식을 팔고 철수했다. 허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취하는 이들의 ‘먹튀’ 뒤에는 해당 기업과 소액주주들이 피해자로 남는다.
사모펀드의 무분별한 기업지배는 산업자본의 일정 한도 이상 금융자본 소유를 금지한 금산분리(金産分離) 원칙도 흔들린다. 경영참여형 펀드는 금융자본임에도 지분참여로 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세차익이 목적인 사모펀드의 제한 없는 지분투자는 공공성이 강한 기간산업일수록 그 위험성은 더 커진다. 경영의 실패로 주인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선진국들은 항공사의 파산 때마다 산업 내의 M&A를 통해 경쟁력을 키웠다. 2000년대 들어 도산한 TWA와 노스웨스트항공은 각각 아메리칸항공(2001년)과 델타항공(2008년)에 인수되었고, 컨티넨탈항공과 US에어도 유나이티드항공(2010년)과 아메리칸항공(2013년)에 흡수되었다. 메이저 항공사들의 M&A로 업계가 재편되는 동안 금융자본들이 대리인을 내세워 경영에 참여한 사례는 없다. 산업 초기부터 각국 정부는 자국의 항공사를 기간산업으로 보호·육성해 오고 있다. 항공교통이 지니는 공공성과 관련산업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세계 항공시장을 시장경쟁체제로 전환시킨 미국의 규제완화법(1978년) 이후에도 각국은 금융과 통신, 항공 등의 기간산업에 대한 보호를 계속하고 있다. 항공안전과 서비스 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대한항공은 항공우주산업에서도 버팀목이다. 군용기의 MRO, 스마트무인기와 드론 개발로 방위산업의 핵심사업을 수행하면서 창업 후 50년 넘도록 구제금융 없이 순항 중이다. 오너일가의 ‘갑질’ 에 대한 여론으로 고 조양호 그룹회장은 연임에 실패했지만 2019년 불황에도 국내 업계에선 유일하게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젊은 경영진으로 교체된 조원태 회장이 내놓은 쇄신안이 과연 중립적 주주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기간산업에 대한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도 문제지만, 기업의 경영권 분쟁에는 주목할 것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주주행동주의가 일자리 창출이나 R&D 투자보다 단기 이익을 추구해 장기적인 가치 창출을 저해한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권 싸움으로 피 흘리는 자는 누구인가? 단기 투자 목적의 헤지펀드는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방해가 된다.” 미국 델라웨어주의 대법원장을 지낸 스트라인(Leo E. Strine)이 유명저널(YLJㆍ2017)에 게재한 논문이 눈길을 끈다.
경영권 싸움으로 피 흘리는 자 누구인가
항공업계가 재편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HDC현대산업에 매각된 데 이어 지난 달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인수를 결정했다. ‘재팬 보이콧’으로 인한 여행객 급감, 환율 상승과 내수경기의 침체로 고전하는 항공업계에 코로나19까지 덮쳤다. 미국과 유럽지역의 여행경보속에 WHO의 팬데믹 선언으로서 중장거리 노선에 치중하던 대형 항공사들도 위기에 빠졌다. 극심한 불황 속에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까지 겹쳐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싸움은 예측불허다. 주총을 앞두고 사모펀드 KCGI와 반도건설이 손잡았고, ‘땅콩회항’으로 그룹의 위기를 촉발했던 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도 합류했다. 합종연횡의 3자 연합으로 한진칼의 최대주주는 37.08%를 보유한 KCGI의 대주주인 그레이스홀딩스로 바뀌었다. 조원태 회장과 나머지 가족, 기타 특수관계인의 보유지분을 모두 합해도 격차는 1% 안팎이다. 박빙의 승부다. 어느 쪽도 과반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위한 여론전까지 전개되고 있다. 경쟁적 환경에서 기업은 종종 M&A를 통해 생존과 성장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번 경영권 다툼에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큰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모펀드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투자기업의 가치를 높여 수익을 배분하는 합자회사 형태의 펀드다.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주식에 투자해 기업가치가 오르면 되팔아 이득을 남기는 것이 수익모델이다. 그동안 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들은 주주권익을 명분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막대한 차익을 챙겨 떠났다. 소버린은 SK의 지배구조와 경영진 교체(2003)로 약 90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고,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매각(2003년)으로 약 2조원의 이익을 챙겼다. KT&G를 인수한 칼아이칸은 자회사의 매각(2005년)으로 약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2016년 삼성전자의 주식 분할 당시 30조원의 특별 현금배당을 요구하고, 재작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반대하면서 경영권을 요구했던 엘리엇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작년 말 주식을 팔고 철수했다. 허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취하는 이들의 ‘먹튀’ 뒤에는 해당 기업과 소액주주들이 피해자로 남는다.
사모펀드의 무분별한 기업지배는 산업자본의 일정 한도 이상 금융자본 소유를 금지한 금산분리(金産分離) 원칙도 흔들린다. 경영참여형 펀드는 금융자본임에도 지분참여로 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세차익이 목적인 사모펀드의 제한 없는 지분투자는 공공성이 강한 기간산업일수록 그 위험성은 더 커진다. 경영의 실패로 주인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선진국들은 항공사의 파산 때마다 산업 내의 M&A를 통해 경쟁력을 키웠다. 2000년대 들어 도산한 TWA와 노스웨스트항공은 각각 아메리칸항공(2001년)과 델타항공(2008년)에 인수되었고, 컨티넨탈항공과 US에어도 유나이티드항공(2010년)과 아메리칸항공(2013년)에 흡수되었다. 메이저 항공사들의 M&A로 업계가 재편되는 동안 금융자본들이 대리인을 내세워 경영에 참여한 사례는 없다. 산업 초기부터 각국 정부는 자국의 항공사를 기간산업으로 보호·육성해 오고 있다. 항공교통이 지니는 공공성과 관련산업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세계 항공시장을 시장경쟁체제로 전환시킨 미국의 규제완화법(1978년) 이후에도 각국은 금융과 통신, 항공 등의 기간산업에 대한 보호를 계속하고 있다. 항공안전과 서비스 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대한항공은 항공우주산업에서도 버팀목이다. 군용기의 MRO, 스마트무인기와 드론 개발로 방위산업의 핵심사업을 수행하면서 창업 후 50년 넘도록 구제금융 없이 순항 중이다. 오너일가의 ‘갑질’ 에 대한 여론으로 고 조양호 그룹회장은 연임에 실패했지만 2019년 불황에도 국내 업계에선 유일하게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젊은 경영진으로 교체된 조원태 회장이 내놓은 쇄신안이 과연 중립적 주주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기간산업에 대한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도 문제지만, 기업의 경영권 분쟁에는 주목할 것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주주행동주의가 일자리 창출이나 R&D 투자보다 단기 이익을 추구해 장기적인 가치 창출을 저해한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권 싸움으로 피 흘리는 자는 누구인가? 단기 투자 목적의 헤지펀드는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방해가 된다.” 미국 델라웨어주의 대법원장을 지낸 스트라인(Leo E. Strine)이 유명저널(YLJㆍ2017)에 게재한 논문이 눈길을 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 건설경제신문 2020. 3.17[칼럼]
<원문>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2003161551185650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