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같은 공적자금 - 조동근
	2004-05-31
‘판도라 상자’ 같은 공적자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공적자금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주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가 열어서는 안 될 상자라면 공적자금 판도라 상자는 언젠가는 열지 않을 수 없는 상자다. 공적자금의 판도라 상자는 두 번 열렸다. 그 때마다 쏟아져 나온 것은 방만한 운영과 횡령, 유용, 돈잔치 그리고 도덕적 해이였다. 공적자금은 그 누구의 돈도 아니기에 여간 잘 관리하지 않고서는 태생적으로 낭비의 소지가 상존한다. 27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공적자금의 유용과 횡령 그리고 부당한 집행 등으로 낭비된 공적자금이 1조원을 넘는다. 이로써 공적자금 운영 및 집행과 관련해 그동안 세간에 나돌았던 유용·횡령·과다집행 등의 의혹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 더욱이 2001년 11월의 1차 감사원 감사에도 불구하고 공적자금의 관리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관련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무방비로 방치돼 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공적자금의 투입은 금융 위기와 신용 경색이라는 IMF 외환위기 ‘후폭풍’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금융 시스템의 ‘최소한의 복구’와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었다. 따라서 공적자금은 분명 순기능의 측면이 있다. 그리고 공적자금 투입은 시간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내려진 ‘초유’의 정책 결정이었다. 따라서 정잭의 선례(先例)가 없었던 만큼 일정부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에서 공적자금의 방만한 운영과 체계적이지 못한 관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정책 당국의 공적자금에 대한 안이한 정책 인식이 잘못된 첫 단추였다고 판단된다. 공적자금은 회계적으로 국가 빚도 아니며 조속한 시일내에 회수될 수 있다는 정책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공적자금 투입액의 과소 추정과 그에 따른 공적자금의 추가 투입 등으로 관련 기관의 공적자금 집행과 운영의 ‘긴장감’을 높일 수 없었다. 그결과 정부 관련 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억제되지 못했으며, 정부 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로 전이됐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과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이 구별돼야 하듯이, 정부 관련 기관의 잘못 중에는 양해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 외환위기 직후 갑자기 쏟아져 나온 부실채권 처리가 화급했던 당시, 유관 기관이 외국 자본에 휘둘리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항력이었을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전문성의 부족으로 눈을 뜨고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는 차원이 다르다. 감사원에 따르면, 자산관리공사는 부실채권 정리기금에서 2332억원에 사온 5조여원의 부실채권을, 자체 일반회계를 이용해 863억원에 다시 매입했다. 그것만으로도 공적자금에 1469억원의 손실을 끼친 것이다. 자산관리공사는 그 후 채권의 일부를 매각해 3134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공적자금으로 국고에 회수됐어야 할 돈을 이익으로 회계처리하고 주주들에게 배당까지 해 왔으며 정부의 기관평가에서도 우수한 평점을 받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급보증을 받은 우량채권 99억원을 무담보채권으로 오인해 단돈 100원에 미국계 투자회사에 매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164조원이 넘는다. 이 정도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면, 금융산업의 건전성 회복이라는 하드웨어적 구조조정은 물론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소프트웨어적 구조조정도 마땅히 완료됐어야 한다. 아직도 금융 시스템의 ‘질적 성숙’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의 일단은 공적자금의 수혜를 받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척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도라 상자에 남은 희망은, 시행착오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다. 공적자금 관리 및 회수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이고 이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그리고 시장원리에 의한 상시적 구조조정의 정착만이 공적자금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임을 인식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5. 2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