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표준’ 된 한국영화 - 조희문
	2004-05-25
‘세계표준’ 된 한국영화 한국영화는 이제 세계 영화계의 성공 모델이다. 각국의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산업적 활력과 에너지 충만한 창의력을 놀라운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것은 ‘1000만 관객’ 시대의 한국영화가 국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김기덕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한국영화가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거둔 또 하나의 쾌거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미국영화의 독주를 견제할 정도로 활기찬 산업적 활력이 국제적인 평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란 점에서 한국영화의 폭발하는 에너지와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올드보이’의 수상은 현재의 한국영화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의미를 둘 만하다.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역사는 오래다.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희극상을 수상한 것은 전쟁의 황폐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한국영화계에 단비같은 격려가 되었다. 한국 일본 타이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7개국이 참여하는 미니 국제영화제였지만 한국영화가 ‘우물’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이어 강대진 감독의 ‘마부’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당시 한국영화계로서는 뜻밖의 훈장을 받은 셈이었지만 그 감동을 이어 나가기에는 기력도, 정보도 힘에 부쳤다. 1980년대 들어 새롭게 도약을 시도한 한국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이 ‘씨받이’(1986)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것을 계기로 여러 영화제에서 굵직한 성과를 거두었다. 모스크바영화제에서의 여우주연상(강수연 ‘아제아제바라아제’) 남우주연상(이덕화 ‘살어리랏다’)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신혜수 ‘아다다’, 이혜숙 ‘은마는 오지 않는다’)이 이어졌고, 배용균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으로 로카르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함으로써 유수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는 전기를 만들었다.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감독이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잇달아 수상한 것은 최근의 성과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영화의 국제적 평가나 위상은 변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의 산업적 바탕은 불안했고, 창의적 에너지는 미약했다. 한국영화가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간절하게 왕의 성은을 기다리는 후궁들처럼 유수한 국제영화제가 관심을 가져 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쉬리’로 상징되는 한국영화의 도약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영화 산업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스스로 확인했고 미국영화와 맞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올드보이’나 ‘사마리아’ 같은 영화들의 수상은 그 같은 변화의 한 단면이다. 여러 영화제에 참가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평균적인 ‘한국영화’들이다. 영화제의 눈에 들기 위해 특별히 연출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국제영화제 수상이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평가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영화계의 일반적인 흐름과 국제영화제에서의 평가가 근접하고 있는 현상은 한국영화가 그만큼 내부적인 성장을 하고 있으며 자신감도 확보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계 영화계 역시 현재의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독특한 개성과 열정을 새로운 에너지로 평가하고 있다. 평가를 받기 위해, ‘그들’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쓸 때보다 나만의 독특한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행동할 때 더 많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새로운 한국영화’가 거둔 또 다른 성과다. 한국영화는 이제 더 이상 지구촌 변방의 영화가 아니라 국제영화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4년은 그 원년이라고 할 만하다. ‘올드보이’의 수상은 그 표시 가운데 하나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 / 영화평론가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5.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