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과의 대화 - 송복
	2004-05-24
기업인들과의 대화 "지금은 정말 앞이 안보여" "신에 발 맞추라는 격" 우리 경제계·기업계를 대표하는 회장 몇 분과 예기치 않게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이분들의 말을 가감 없이 적어본다. “지금 우리 경제는 이구동성으로 어렵다고 말하고 심하게는 위기가 심각하다고만 말한다. 이는 약과다. 연말이 되면 ‘회복불능’이라는 소리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단순히 각종 경제지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가 사상 최악이라는 데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우리가 언제 산이 높다고 좌절하고 물이 깊다고 포기했느냐. 그러나 지금은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은 정부, 노조의 탓에 기업 자체의 탓도 있다. 우리처럼 권력이 무소부지한 나라에선 대통령 마인드에 따라 기업환경이 달라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드물게 경제마인드가 없는 대통령이다. 오직 정치마인드만 있다. 경제를 경제 하듯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 하듯 하려 한다. 작년 세계경제 평균 성장률이 3.2%인데 우리는 그것에도 못 미친 3% 이하다. 그럼에도 기업인들이 의도적으로 위기를 조성하고 유포시킨다고 힐책한다.” “대통령 측근도 모두 같은 소리를 낸다. 정치마인드로 경제를 보기 때문에 부르짖는 개혁도 경제살리기와는 거리가 한창 멀다. 그런 개혁이 성공한 예도 없거니와 더 나쁜 것은 그 목소리만큼 불확실성이 더없이 높아간다는 것이다. 도대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느냐이다. 그런 불확실성 상황에선 대통령이 기업인과 아무리 대화를 나눠도 기업인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것이 기업인의 생리다.” “우리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스위스 국제경쟁연구원(IMD)의 최근 보고서에서처럼 세계 최고다. 노사경쟁력은 60개 나라 중 60등이다. 기업은 수익이 계속 떨어지는데 고용은 조정할 수 없고, 반대로 실질 임금은 계속 올려야 한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우리 기업처럼 굳어져버린 나라가 또 있을까. 어느 외국기업이 이 구조에 뛰어들어 돈을 대려 할 것인가.” “기업의 사활은 투자에 있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 투자를 못했지만 지금은 돈을 충분히 갖고도 국내에는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투자수요가 줄어드는 것만큼 성장률도 떨어진다. 대신 생산기지를 다른 나라로 옮겨 그 나라에 성장률도 올려주고 일자리도 늘려준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나라에 가서 우리 기업이 만든 제품을 그 나라 시장에 팔지 않고, 거꾸로 우리 시장으로 들여와 국내 경쟁업체들의 문을 닫게 하는 것이다.” “어느 기업 할 것 없이 기업활동의 근간은 의사결정 구조다.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 기업 특유의 지배구조를 갖는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기업인 GE와 경쟁한다. 그 지배구조를 정부가 이런저런 기준을 만들어서 거기에 따라 바꾸라고 압력을 가한다. 서툰 신발장수 신 만들어 놓고 발 맞추라는 격이다. 맞지 않으면 발가락이라도 자르라는 것이 지금 우리 정부다. 출자총액제한제도도 그 한 예다. 외국기업은 전차에 미사일을 싣고 와도 되고, 우리 기업은 차포도 붙이면 안 된다는 최고의 역차별이다.” “불쌍한 건 우리 국민이다. 정권은 경제마인드가 없고 기업은 기업마인드를 잃었다. 기업인들이야 돈도 있고 능력도 있는 것만큼 다른 나라에 가면 환영받는다. 문제는 이 긴 터널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이다. 사실 기업인치고 탄핵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헌재의 기각을 보고 국운을 생각했다. 김대중 정권 이래 이 정권에 와서 최고조에 달하는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의 팽배,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이 이렇게 절절할 수가 없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4. 5. 24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