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는 산업사회를 특징 짓는 존재다. 부가가치 창출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으로 국가 재정에 기여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경영자가 바람직할까? 자본주의 초기에는 기업가 스스로 자본을 마련하고 경영을 맡는 오너경영의 형태였다. 컬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이나 동인도회사의 식민지 개척기에는 대규모 사업을 위해 자금을 대는 주주가 있기는 했지만, 자본가가 직접 기업을 경영했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경영의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경영인이 자본가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늘고 주식회사가 보편화되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산업사회의 새로운 지배구조로 인식되었다. 경영은 전문경영자가 담당하고 성과를 배당으로 주주에게 돌려주는 역할 분담체계는 1970년대까지 경영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마르크스(Marx)는 주식회사의 설립과 경영자의 등장으로 19세기 후반기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사회화가 이미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유한계급이론을 신봉했던 벌리(Berle)와 민즈(Means), 경영혁명(1941)을 저술한 번햄(J. Burnham)은 미국의 거대 기업과 조직들이 빠르게 전문경영자들에 의해 지배될 것으로 예견했다. 그러나 학계의 주류를 형성했던 경영자 지배이론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젠센(Jensen)과 매클링(Meckling)은 주주와 경영자 간의 이해상충을 파고들었다. 의뢰인과 대리인 간의 계약으로 형성된 지배구조에 따라 경영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대리인 이론(1976)의 등장이다. 그동안 단순한 블랙박스로 간주되었던 소유구조와 경영성과 간의 상관성에 대한 실증연구가 이어지면서 경영자 지배의 주장들은 이론에 머물고 말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에서 오너의 경영참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이 반증이다. 오너경영자와 전문경영자의 우월성 논쟁은 지금 해법 없는 담론이 되었다.
실천학문인 경영학에서도 어떠한 지배구조가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의 논쟁을 소개할 뿐 더 이상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패러다임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국가마다 상이한 사회ㆍ문화적 특성과 법제도처럼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요인들이 있고, 동일한 생산에도 기업의 내부에 형성된 조직문화와 노사관계, 경영자의 리더십과 역량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경영현상이 정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최근 경영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참여와 감시를 강화한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국내 상장기업들은 낮선 경영환경에 직면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위한 주주권행사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청회까지 마쳤다. 바야흐로 연기금과 시민단체, 정부, 해외펀드의 경영 참여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경총은 지난달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의 전면적 철회를 건의하는 경영계의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 현재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에 해당하는 일부 주주활동까지 경영권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 5%룰 개정안의 골자다. 문제의 중심에 선 국민연금은 2018년 국내 주식에 투자해서 -16.7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기금에서 22조1,600억원을 날린 것이다. 연금은 투자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에 앞서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맡긴 돈을 관리하는 국민의 집사(steward) 역할에 전념하라는 얘기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관련 부처, 국책 연구기관, 노사 대표, 시민단체 등 20명이 참여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는 스스로 국민의 자금을 관리하는 집사들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로 경영 참여가 확대될수록 국민연금이 이들 집사의 경영 개입과 규제의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는 커진다. 세계적 연기금 사례들과 같이 정치권의 개입 소지를 차단하면서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국내 기업들은 외국의 기업들이 갖고 있는 포이즌필이나 차등 의결권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다. 1주 1표의 원칙에 따르는 현실에서 주주의 경영권 참여 폭이 늘어난다면 세계를 떠도는 투기자본의 우량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은 거세질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경영 개입 요건을 강화하도록 상세보고 의무 대상인 투자자 요건을 영국, 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현행 5% 지분에서 3%로 낮춰 달라는 재계의 요구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팎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외부의 경영 개입을 확대하는 것은 투자와 경제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오너 경영자이든 전문 경영자이든 경영은 기업의 흥망을 책임진 그들의 영역이다.
역기능 큰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기업가는 산업사회를 특징 짓는 존재다. 부가가치 창출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으로 국가 재정에 기여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경영자가 바람직할까? 자본주의 초기에는 기업가 스스로 자본을 마련하고 경영을 맡는 오너경영의 형태였다. 컬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이나 동인도회사의 식민지 개척기에는 대규모 사업을 위해 자금을 대는 주주가 있기는 했지만, 자본가가 직접 기업을 경영했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경영의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경영인이 자본가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늘고 주식회사가 보편화되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산업사회의 새로운 지배구조로 인식되었다. 경영은 전문경영자가 담당하고 성과를 배당으로 주주에게 돌려주는 역할 분담체계는 1970년대까지 경영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마르크스(Marx)는 주식회사의 설립과 경영자의 등장으로 19세기 후반기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사회화가 이미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유한계급이론을 신봉했던 벌리(Berle)와 민즈(Means), 경영혁명(1941)을 저술한 번햄(J. Burnham)은 미국의 거대 기업과 조직들이 빠르게 전문경영자들에 의해 지배될 것으로 예견했다. 그러나 학계의 주류를 형성했던 경영자 지배이론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젠센(Jensen)과 매클링(Meckling)은 주주와 경영자 간의 이해상충을 파고들었다. 의뢰인과 대리인 간의 계약으로 형성된 지배구조에 따라 경영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대리인 이론(1976)의 등장이다. 그동안 단순한 블랙박스로 간주되었던 소유구조와 경영성과 간의 상관성에 대한 실증연구가 이어지면서 경영자 지배의 주장들은 이론에 머물고 말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에서 오너의 경영참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이 반증이다. 오너경영자와 전문경영자의 우월성 논쟁은 지금 해법 없는 담론이 되었다.
실천학문인 경영학에서도 어떠한 지배구조가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의 논쟁을 소개할 뿐 더 이상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패러다임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국가마다 상이한 사회ㆍ문화적 특성과 법제도처럼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요인들이 있고, 동일한 생산에도 기업의 내부에 형성된 조직문화와 노사관계, 경영자의 리더십과 역량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경영현상이 정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최근 경영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참여와 감시를 강화한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국내 상장기업들은 낮선 경영환경에 직면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위한 주주권행사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청회까지 마쳤다. 바야흐로 연기금과 시민단체, 정부, 해외펀드의 경영 참여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경총은 지난달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의 전면적 철회를 건의하는 경영계의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 현재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에 해당하는 일부 주주활동까지 경영권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 5%룰 개정안의 골자다. 문제의 중심에 선 국민연금은 2018년 국내 주식에 투자해서 -16.7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기금에서 22조1,600억원을 날린 것이다. 연금은 투자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에 앞서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맡긴 돈을 관리하는 국민의 집사(steward) 역할에 전념하라는 얘기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관련 부처, 국책 연구기관, 노사 대표, 시민단체 등 20명이 참여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는 스스로 국민의 자금을 관리하는 집사들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로 경영 참여가 확대될수록 국민연금이 이들 집사의 경영 개입과 규제의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는 커진다. 세계적 연기금 사례들과 같이 정치권의 개입 소지를 차단하면서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국내 기업들은 외국의 기업들이 갖고 있는 포이즌필이나 차등 의결권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다. 1주 1표의 원칙에 따르는 현실에서 주주의 경영권 참여 폭이 늘어난다면 세계를 떠도는 투기자본의 우량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은 거세질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경영 개입 요건을 강화하도록 상세보고 의무 대상인 투자자 요건을 영국, 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현행 5% 지분에서 3%로 낮춰 달라는 재계의 요구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팎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외부의 경영 개입을 확대하는 것은 투자와 경제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오너 경영자이든 전문 경영자이든 경영은 기업의 흥망을 책임진 그들의 영역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 건설경제 2019. 11.26[칼럼]
<원문>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91125174916140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