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가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 표결을 위해 토요일이던 지난 19일 회의를 열었다. 영국 의회의 토요일 개회는 1982년 4월 3일 이후 37년 만의 일이다. 그때는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포클랜드제도 영유권 회복을 선언하며 침공했고, 아르헨티나와의 전쟁 수행을 위해 하원 결의가 필요해 토요일 긴급 소집됐다.
영국으로서는 이번 브렉시트 표결 역시 포클랜드전쟁 못지않게 긴급한 현안임을 보여준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EU와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따르면 영국은 오는 31일 EU를 탈퇴하게 돼 있다. 그런데 초강경 브렉시트 추진론자인 보리스 존슨이 후임 총리가 되면서 정치적 상황이 나빠졌다. 합의가 없더라도 무조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 입장을 고수해 온 존슨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 9월 9일 영국 의회는 ‘벤 액트(Benn Act)’로 불리는 노딜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한마디로 존슨 총리를 물 먹인 것이고, 총리에 대한 영국 의회의 반란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9일까지 존슨 총리가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EU에 3개월의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메이 전 총리의 합의안에서 핵심 쟁점은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 국경선 문제였다. 아일랜드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게 됐는데, 오랫동안 테러 등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유럽 통합 시기에 평화협정으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국경을 없애고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그런데 브렉시트로 국경 장벽을 다시 설치해야 하므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장 이 문제를 풀 방법이 없던 메이 전 총리는 ‘백스톱(Backstop)’ 방식을 제안했다. 2년간의 브렉시트 이행 기간에 국경선 문제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었지만, 브렉시트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 메이 전 총리를 신뢰하지 못했다.
벤 액트에 따라 존슨 현 총리는 새로운 브렉시트안을 EU와 협의해야만 했다. 북아일랜드에 대해 이중관세 체계를 허용하고,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를 명분상 영국 관세 영역에 있는 것으로 하되, 실질적으로는 EU 관세 체계를 적용받도록 하는 것이 백스톱의 해법으로 도출된 것이다. 19일까지 의회 승인을 받아야 했으므로 17일 영국과 EU는 이중관세 체계에 합의했고, 다음 날인 18일 EU의 최고 의결기구인 EU 정상회의에서 승인됐다. 노딜금지법에 따라 영국 의회는 19일 의결을 해야 했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최근 사흘 동안 있었던 주요 일정이다.
하원 표결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던 존슨 총리에게 또 다른 반란이 생겼다. 본안 표결에 앞서 질서 있는 브렉시트를 위한 이행 법률이 마련될 때까지 존슨 총리의 합의안에 대한 최종 승인 표결을 유보하자는 올리버 레트윈 경의 수정안이 가결된 것이다. 뒤통수를 맞은 존슨 총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19일 EU에 브렉시트 3개월 연기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에 국경선이 생기게 되면 아일랜드는 과거의 악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 브렉시트 협상에서 가장 발언권이 높은 EU 회원국이었다. 백스톱을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중관세 체제는 그나마 아일랜드가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영국 입장에서 보면 걱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영국이 비EU 국가인 상황에서 북아일랜드가 EU 체제에 고착될 수 있고,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추구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EU로 넘어갔다. 3개월간의 브렉시트 연장을 승인해 주지 않으면 이달 말 노딜 브렉시트가 확정된다. 외신에 따르면 연장 가능성에 무게감이 있어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존슨 총리의 소신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연장을 고려할 듯하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존슨 총리를 배려하는 유럽 지도자를 찾기는 어렵다.
현 상황에서 3개월 연장은 노딜 브렉시트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하원 회의에서 제2 국민투표 개최를 제안하는 수정안이 제안된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메이 총리 시절에는 예상하기 어려웠으나, 영국의 미래를 망치려 드는 존슨 총리가 자초한 것으로 생각된다. 3개월 연장 기간에 영국이 제2 국민투표를 실시해 브렉시트에 대한 국가적 방향을 재정립했으면 한다.
브렉시트 혼미와 영국 리더십 실패
英의회 ‘노딜 브렉시트’ 금지법
아일랜드-北아일랜드 국경 쟁점
이행법 선행 요구로 설상가상
북아일랜드 독립 요구도 우려
EU가 3개월 연장해줘야 숨통
제2 국민투표로 재정립 바람직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 표결을 위해 토요일이던 지난 19일 회의를 열었다. 영국 의회의 토요일 개회는 1982년 4월 3일 이후 37년 만의 일이다. 그때는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포클랜드제도 영유권 회복을 선언하며 침공했고, 아르헨티나와의 전쟁 수행을 위해 하원 결의가 필요해 토요일 긴급 소집됐다.
영국으로서는 이번 브렉시트 표결 역시 포클랜드전쟁 못지않게 긴급한 현안임을 보여준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EU와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따르면 영국은 오는 31일 EU를 탈퇴하게 돼 있다. 그런데 초강경 브렉시트 추진론자인 보리스 존슨이 후임 총리가 되면서 정치적 상황이 나빠졌다. 합의가 없더라도 무조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 입장을 고수해 온 존슨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 9월 9일 영국 의회는 ‘벤 액트(Benn Act)’로 불리는 노딜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한마디로 존슨 총리를 물 먹인 것이고, 총리에 대한 영국 의회의 반란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9일까지 존슨 총리가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EU에 3개월의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메이 전 총리의 합의안에서 핵심 쟁점은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 국경선 문제였다. 아일랜드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게 됐는데, 오랫동안 테러 등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유럽 통합 시기에 평화협정으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국경을 없애고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그런데 브렉시트로 국경 장벽을 다시 설치해야 하므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장 이 문제를 풀 방법이 없던 메이 전 총리는 ‘백스톱(Backstop)’ 방식을 제안했다. 2년간의 브렉시트 이행 기간에 국경선 문제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었지만, 브렉시트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 메이 전 총리를 신뢰하지 못했다.
벤 액트에 따라 존슨 현 총리는 새로운 브렉시트안을 EU와 협의해야만 했다. 북아일랜드에 대해 이중관세 체계를 허용하고,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를 명분상 영국 관세 영역에 있는 것으로 하되, 실질적으로는 EU 관세 체계를 적용받도록 하는 것이 백스톱의 해법으로 도출된 것이다. 19일까지 의회 승인을 받아야 했으므로 17일 영국과 EU는 이중관세 체계에 합의했고, 다음 날인 18일 EU의 최고 의결기구인 EU 정상회의에서 승인됐다. 노딜금지법에 따라 영국 의회는 19일 의결을 해야 했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최근 사흘 동안 있었던 주요 일정이다.
하원 표결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던 존슨 총리에게 또 다른 반란이 생겼다. 본안 표결에 앞서 질서 있는 브렉시트를 위한 이행 법률이 마련될 때까지 존슨 총리의 합의안에 대한 최종 승인 표결을 유보하자는 올리버 레트윈 경의 수정안이 가결된 것이다. 뒤통수를 맞은 존슨 총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19일 EU에 브렉시트 3개월 연기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에 국경선이 생기게 되면 아일랜드는 과거의 악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 브렉시트 협상에서 가장 발언권이 높은 EU 회원국이었다. 백스톱을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중관세 체제는 그나마 아일랜드가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영국 입장에서 보면 걱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영국이 비EU 국가인 상황에서 북아일랜드가 EU 체제에 고착될 수 있고,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추구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EU로 넘어갔다. 3개월간의 브렉시트 연장을 승인해 주지 않으면 이달 말 노딜 브렉시트가 확정된다. 외신에 따르면 연장 가능성에 무게감이 있어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존슨 총리의 소신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연장을 고려할 듯하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존슨 총리를 배려하는 유럽 지도자를 찾기는 어렵다.
현 상황에서 3개월 연장은 노딜 브렉시트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하원 회의에서 제2 국민투표 개최를 제안하는 수정안이 제안된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메이 총리 시절에는 예상하기 어려웠으나, 영국의 미래를 망치려 드는 존슨 총리가 자초한 것으로 생각된다. 3개월 연장 기간에 영국이 제2 국민투표를 실시해 브렉시트에 대한 국가적 방향을 재정립했으면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출처- 문화일보 2019. 10.22[칼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2201033011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