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알리는 9월이 시작됐지만 미·중 무역전쟁은 여전히 뜨겁다. 작년 여름 관세폭탄을 주고받으면서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그새 관세전쟁은 기술전쟁, 인재전쟁, 환율전쟁으로 확대됐다. 한여름의 열기가 고조되던 6월 말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잠정 휴전은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의 무기고에서 더 크고 묵직한 폭탄을 찾아내 상대를 향해 쏘아 올렸다. 9월의 첫날, 미국은 지금까지 관세폭탄 투하 구역에서 벗어나 있던 중국산 소비재에 고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앞서 8월 초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중국도 밀릴세라 미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로 맞불을 놓았다. 화웨이에 기술 공급줄을 차단하겠다던 미국은 유예기간을 연장해주고 그 대가로 요구했던 미국 농산물 대량구매 약속을 중국은 한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
트럼프의 협상전술에 이젠 익숙해진 중국은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 무역전쟁 이전부터 본격화된 구조적 침체가 무역전쟁과 맞물려 중국 경제는 고난의 세월을 겪고 있지만,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역설적으로 중국 인민들을 시 주석 아래 단합되게 만들고 있다. 선동·선전에 익숙한 중국 공산당은 미·중 무역전쟁을 중국 방식의 경제 발전을 부정하는 미국의 21세기판 제국주의 탓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미·중은 쉽사리 타협 국면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거대한 산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한다는 위협을 내세워 협상을 거부하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개정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 협상이 타결된 이듬해 멕시코를 향해 불법 이민을 차단하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해서 멕시코의 굴복을 받아냈다. 미·중 무역협정에 시 주석이 합의한 후 트럼프가 변심해 추가 관세폭탄으로 위협하면 어떡할까에 중국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WTO 가입 당시 합의한 많은 개방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중국이다. 지금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이 된 지식재산권 불이행 시비 역시 마찬가지. 이런 흑역사를 가진 중국에 대한 안전장치를 미국은 고심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대로 둘 수 없다면서 국가 주도의 중국 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미국과 "숫자는 타협 가능하지만, 시스템은 협상 불가"라는 중국은 애초부터 합의가 불가능했다. 중국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합의가 나오더라도 잠시 갈등을 봉합하는 것일 뿐, 얼마 후에는 서로의 다른 경제 체제가 필연적으로 야기할 무역충돌에 기존 합의는 무색해지고 무력해질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법정 가상화폐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가상화폐를 국가가 주도해 도입하겠다는 중국의 발상은 사이버 공간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답다. 미·중 관계 연구 권위자인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지금 미·중 갈등은 5막 3장의 연극 중 아직 1막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새로운 막이 진행될수록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규범에 기반한 다자 자유무역 체제와 한미동맹 바탕 위에 생존과 번영을 누려온 한국의 성공 방정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진실의 순간에 한국은 서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와 진실의 순간
가을을 알리는 9월이 시작됐지만 미·중 무역전쟁은 여전히 뜨겁다. 작년 여름 관세폭탄을 주고받으면서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그새 관세전쟁은 기술전쟁, 인재전쟁, 환율전쟁으로 확대됐다. 한여름의 열기가 고조되던 6월 말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잠정 휴전은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의 무기고에서 더 크고 묵직한 폭탄을 찾아내 상대를 향해 쏘아 올렸다. 9월의 첫날, 미국은 지금까지 관세폭탄 투하 구역에서 벗어나 있던 중국산 소비재에 고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앞서 8월 초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중국도 밀릴세라 미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로 맞불을 놓았다. 화웨이에 기술 공급줄을 차단하겠다던 미국은 유예기간을 연장해주고 그 대가로 요구했던 미국 농산물 대량구매 약속을 중국은 한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
트럼프의 협상전술에 이젠 익숙해진 중국은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 무역전쟁 이전부터 본격화된 구조적 침체가 무역전쟁과 맞물려 중국 경제는 고난의 세월을 겪고 있지만,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역설적으로 중국 인민들을 시 주석 아래 단합되게 만들고 있다. 선동·선전에 익숙한 중국 공산당은 미·중 무역전쟁을 중국 방식의 경제 발전을 부정하는 미국의 21세기판 제국주의 탓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미·중은 쉽사리 타협 국면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거대한 산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한다는 위협을 내세워 협상을 거부하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개정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 협상이 타결된 이듬해 멕시코를 향해 불법 이민을 차단하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해서 멕시코의 굴복을 받아냈다. 미·중 무역협정에 시 주석이 합의한 후 트럼프가 변심해 추가 관세폭탄으로 위협하면 어떡할까에 중국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WTO 가입 당시 합의한 많은 개방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중국이다. 지금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이 된 지식재산권 불이행 시비 역시 마찬가지. 이런 흑역사를 가진 중국에 대한 안전장치를 미국은 고심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대로 둘 수 없다면서 국가 주도의 중국 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미국과 "숫자는 타협 가능하지만, 시스템은 협상 불가"라는 중국은 애초부터 합의가 불가능했다. 중국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합의가 나오더라도 잠시 갈등을 봉합하는 것일 뿐, 얼마 후에는 서로의 다른 경제 체제가 필연적으로 야기할 무역충돌에 기존 합의는 무색해지고 무력해질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법정 가상화폐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가상화폐를 국가가 주도해 도입하겠다는 중국의 발상은 사이버 공간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답다. 미·중 관계 연구 권위자인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지금 미·중 갈등은 5막 3장의 연극 중 아직 1막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새로운 막이 진행될수록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규범에 기반한 다자 자유무역 체제와 한미동맹 바탕 위에 생존과 번영을 누려온 한국의 성공 방정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진실의 순간에 한국은 서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출처- 매일경제 2019. 9.4[칼럼]
<원문>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9/695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