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뒤의 불안한 경제 - 곽상경
	2002-06-21
월드컵 뒤의 불안한 경제 한국을 8강에 올려 놓은 월드컵 열기가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지구의 다른 쪽에서는 경제에 빨간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달러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뉴욕증시의 주가도 연일 급락하고 있다. 기업이익이 예상보다 낮게 나타나고 엔론을 비롯한 많은 기업의 CEO들이 비리와 무능으로 물러나고 있다. 유수 기업에서 물러난 CEO가 300명을 넘고 있다.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쳐 각국의 경제도 불안한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세계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중남미 경제 또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파탄상태에 있고 브라질은 IMF에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중남미의 도미노 현상은 비상상태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 역시 미국 경제의 불안에 동반위기를 우려하며 경제위기에 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경제는 어떻게 호황을 지속하고 있는가?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에 역점을 두기보다 눈앞의 경기활성화 정책이 효력을 발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막대한 공적자금의 과감한 투입, 가계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 증대와 저금리 유지, 소비증대를 위한 정부의 세제 혜택, 빌릴 수 있으면 빌려 쓰고 보자는 무책임과 무분별의 소비의식 등이 소비를 증폭시켰다. 이것이 기업의 활성화를 유도한 것이다. 또한 저금리와 가계대출 증대에 의한 부동산시장 활성화가 건설업 경기를 부추겨 놓았다. 체질강화에 의한 경쟁력으로 수출을 늘리고 투자를 활성화한 과거의 성장형태와 다른 소비중심의 단기성 경기활성화이다. 이러한 경기 활성화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첫째, 소비를 부추긴 가계대출에 비상이 걸렸다. 신용카드 등으로 빌린 돈을 감당하지 못해 사채시장을 찾는 가계가 급증하고 머지않아 금융기관이 대대적인 회수에 나설 것이다. 적정수준을 넘어선 가계대출이 악순환으로 접어들면서 가계부실이 금융부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둘째, 미국 경제의 불안과 그 여파에 의한 세계경제의 위기요인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출부진뿐 아니라 금융과 외환의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소비증대로 활성화된 경기를 수출과 투자의 활성화로 연결시키려는 의도에 차질이 생기면 불경기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셋째, 가계대출의 한계와 과소비 인식으로 소비가 급격히 냉각될 수 있고, 이는 바로 기업의 재고 증가와 부실로 이어지게 된다. 넷째, 더 이상의 수요증가는 공급여분을 잠식하고 초과수요는 바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된다. 끝으로 노사관계의 불안과 정권의 부정부패 및 여권의 선거참패 등에 의한 불신과 레임덕은 경제를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같은 불안요소를 외면하고 단기전략에 급급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민소득추계(7.5% 증가)를 6·13지방선거 전날 발표하는 등 호경기를 내세우는 데 열을 올렸다. 정부는 경기활성화 후유증에 ‘나 몰라라’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 밀려올 불안과 위기요인에 대한 대책도 등한시하고 있다. 12월 대선을 위해 경기활성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의 무책임한 경기정책은 경제의 불안과 불신을 더욱 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불안 파도가 밀려오는 데 대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가계금융 진정, 기업정리, 환율안정, 각종 시장의 수급안정화, 물가안정 등에 역점을 두고 정치·사회·안보 등에서 신뢰구축에 노력해야 할 때다. 경기가 좋을 때 경기가 안 좋은 것에 대비해야 효과가 있다. 지금이라도 정직하고 양심적인 경제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월드컵 함성 뒤에 경제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곽상경 (고려대 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조선일보 2002. 6. 2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