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진 절호의 기회 - 박성조
	2004-04-26
정부가 가진 절호의 기회 한국은 갈등 천국 … 유럽 제3의 길 배우길 총선 결과는 정부에 승리와 무거운 책임을 갖다 주었다. 민성(vox populi)이 천성(vox dei)이라면 정부는 후자의 기대를 잘 읽어야 한다. 정부는 대통령의 막강한 힘, 의회 거대 여당의 힘, 젊은 세대, 시민·사회단체의 힘, 매스컴의 힘을 집결시킬 수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힘의 뒤에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는 유권자의 갈증과 욕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현실은 중복된 대립과 갈등 속에 헤매고 있다. 구태의연한 이념 갈등,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이익갈등 이외에 너무나 노골화된 세대 간, 지역 간, 성별 간, 노사 간의 갈등이다. 한국은 갈등의 천국인지? 갈등 해소보다 오히려 여기에 ‘정치생명’을 두는 정치인이 비일비재한 것 같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지도자들이 이익, 생각의 다양성을 통합하고, 이 속에서 또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상식임에도 밀어준 사람만을 위해서 일한다는 편파성 때문에 상생정치의 필요성을 혹시 잊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해야 한다. 영국수상 블레어, 독일수상 슈뢰더는 1999년 “노동당, 사회민주당이 갈 길”이라는 강령을 선포했다. 앞으로는 ‘좌익이냐, 우익이냐’가 아니고 ‘개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세계경쟁의 관건이며 평등개념을 ‘결과(output)’로부터 ‘개개인의 노력과 창의(input)’에 결부시켜야 한다고 했다. 사회보장의 천국으로 알려졌던 독일은 미래의 방향을 분배보다 성장과 고용쪽으로 바꿨다. 작년 말 독일 연방국회에서 여·야당이 통과시킨 ‘개혁2010’은 슈뢰더의 리더십과 여·야 합의의 결과였다. 실업자가 450만명을 돌파하고, 특히 청년실업자수가 치솟고 있는 와중에서 마침내 개혁의 막차를 탄 셈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국민의 뜻을 받들어 다음과 같은 당면과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첫째, 막강한 정부와 국회는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정의하고 그것의 실현을 가속해야 한다. 새로운 국회의원들은 이념적 척도보다는 한국현실의 당면과제를 초당파적으로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북핵, 이라크 파병, 미군기지 이전문제들을 풀어 나가야 한다. 둘째,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쟁력 위주의 정책기조를 확립하고 국가 전략방향에 대한 거국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강한 시장, 작은 정부’보다 필자는 ‘활기있는 시장, 활기를 주는 정부’를 선호한다. 신자유주의는 ‘소극적 정부’를 주문하나 국가장래를 결정하는 교육·통일·과학·기술·환경 등을 집단이기주의와 단기이익추구 조직에 맡겨 둘 수 없다. 홀(Hall)과 소스키치(Soskice)는 경제 살리기 중심부에 ‘기업’을 갖다 놓는다. 경기회복, 실업문제 해소, 경쟁력 강화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열쇠가 바로 ‘기업’에 있기 때문이다. 반 기업정서를 해소하고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고 투자마인드를 회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 문제를 조기 종결시키고, 관련된 정치인과 기업인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국민들은 ‘일 더하기 운동’을 수행해야 하고, 진지한 고통분담 자세, 책임 있는 경제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금 서구에서는 노동시간을 연장, 탄력화하고 단체협상은 산별차원에서 기업차원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진보적 국회가 성립되었다고 해서 일방적 요구가 다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위기 탈피의 모범국 아일랜드·네덜란드·덴마크·핀란드는 “똘똘 뭉치면 이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박성조 (독일 자유베를린대 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4. 4.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