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끝나면 안정 되찾을까 - 류동길
2004-04-09
총선끝나면 안정 되찾을까 쓰레기 더미로 악취가 풍기고 파리가 들끓던 난지도가 위대한 자연의 힘으로 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꽃이 피니 나비가 날아들고 여러 동식물이 서식하는 새로운 생태공원으로 변했다. 총선정국, 탄핵정국이 끝나면 정치판은 어떻게 될까. 난지도가 탈바꿈하듯 악취가 사라지고 파리가 없어지는, 맑고 밝은 모습으로 바뀔 것인가. 선거란 ‘너 죽고 나 살기’니까 혼란스럽다고 치자. 온갖 말이 오가는 거야 선거판의 속성이라고 하자. 하지만 억지 주장과 논리의 뒤틀림은 그냥 넘길 수 없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은 분명 불행한 사태였다. 하지만 왜 그런 사태가 일어나게 됐는지를 한 번이라도 되돌아보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이 빌미가 됐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은 기자질문에 답한 것인데 그걸 갖고 문제삼는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이 기자질문에 답했든 미리 작정하고 말했든 부적절했다면 부적절한 것이지 어떤 형식으로 말했는지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국민의 다수가 탄핵을 반대하니까 탄핵을 찬성한 것은 반(反)민주라고 한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을 때 사과하지 않은 것은 반민주가 아닌가. 국회의원들은 탄핵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은 어떤가. 부패와 비리를 저지른 자의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국회의원을 골라 자격을 박탈하지 않는 한 그들의 결정은 그들의 몫이다. 탄핵소추의 옳고 그름은 헌법재판소가 판정한다. 그 판정을 기다리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정치인이 국민의 뜻을 헤아려 행동하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모든 걸 여론을 잣대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론으로 모든 걸 결정한다면, 국회는 있을 필요가 없다. 여론조사를 하거나 일부 시민단체에 물어보고 결정하면 될 것이니 말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탄핵소추에 찬성한 국회의원 가운데 이번 총선출마자를 모두 낙선 대상자로 지목했다.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을 넘어선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총선정국을 틈타 법을 지키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이제 공무원노조까지 법률 불복종 선언을 했다. 법은 지켜야 하고 잘못된 법은 고쳐야 마땅하다. 유리할 때 지키고 불리할 때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모두가 자기 잣대로 판단하면 법 안 지키기 경쟁이 벌어질 건 뻔하고 결국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촛불집회를 문화 행사라고 했다. 문화를 그렇게 폄훼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국민적인 증오심은 문화가 낮으면 낮을수록 강하다고 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지도하고 있는 문화혁명은 인텔리의 총몰락을 의미한다”던 임어당(林語堂)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어리석은 질문 한번 해보자. 선거는 왜 하며 정치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모두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거론조차 않는다. 교육부차관이 학벌주의 극복 종합대책을 급하게 발표하는 사이에 교육부총리가 달려와서 아직 확정이 안 된 것이라고 사실상 번복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진귀한 장면이었다. 총선을 의식한 선심정책이라고 웃어넘겨도 좋을 비극인지, 울어야 할 희극인지 헷갈린다. 완벽하게 준비됐다던 고속철이 고장으로 멈춰서는 경우가 잦다. 총선 때문에 개통 일자를 앞당긴 탓이라고 하면 당국은 무어라고 답할 것인가. 탄핵, 민주, 반민주만을 외치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이 한다는 게 국민의 정서에 호소하거나 이미지정치뿐이다. 심각한 청년실업자도, 40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도, 기업의 투자 부진도, 경쟁력 약화도 아예 걱정 거리가 아니다. 일본은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오고, 중국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데 우리는 지금 컴컴한 터널 속에서 어디로 빠져 나갈지 방향조차 모르고 있다. 경제가 활력을 찾으려면 기업은 물론, 모든 부문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 내수 확대가 해결 방안은 아니다. 경쟁력을 높이지 않는 어떤 방안도 경기를 부추기고 경제 성장을 지속시킬 수 없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누구인가. 우리가 어떤 사회,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를 제쳐두고 사생 결단으로 싸울 일은 없다. 세상의 눈과 귀가 선거에 쏠려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선거후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무얼 먹고 살 것이며 누구와 싸워 이길 것인가.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4. 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