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파급효과 - 유세희
2004-04-06
탄핵의 파급효과 총선이 두 주도 채 남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각종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이번 총선은 정당들이 내건 정책과 인물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한 정당의 후보냐 아니냐로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탄핵정국은 총선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 3당엔 탄핵 결의가 악몽일 것이고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잃어버린 말이 다른 말들을 몰고 돌아온 기분일 것이다. 3·12 탄핵 소추가 이번 총선거는 물론 앞으로 한국 정치에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기존의 정치 판도에 미친 파괴력이 워낙 크다 보니까 현시점에서 그 파급 효과를 일단 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은 여야 간의 싸움,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이 극에 이름으로써 일어난 것으로 최종 결정은 헌재에서 이루어지겠지만,타당성 여부를 떠나 헌정사상 불행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일이 양면적이듯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을 이 불행한 일이 한국의 정치 발전에 미칠 영향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부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민심의 추이를 예리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새삼 일 깨워 준 것이다. 민심 파악은 정치의 기초적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탄핵에 동의한 3당은 이 점에서 실패하였다. 특히 한나라당은 지난번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정치권의 변화를 요구하는데도 변화된 국민에 대한 인식도,스스로가 변화해야 할 당위성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 대통령 측근의 비리와 아울러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가 노무현 정권의 국정 수행 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자 이것이 곧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비록 노 대통령에 대해 실망은 하지만 ‘차떼기’로 도덕성이 여지없이 실추된 한나라당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정치 발전이라는 면에서 이번 탄핵정국의 가장 큰 긍정적 부산물이 있다면 보수 정당들의 체질 개선을 들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는데도 대부분 정당들의 당 운영 방식이나 정치 행태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자발적으로 변화하기에는 내부적으로 너무나 많은 장애 요소가 있었다. 지도부 개편,젊은층으로의 물갈이,정치적 부패 방지 조치,여성의 정치적 약진 등은 당의 존폐라는 위기 의식에서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국 정치의 오랜 고질적 요소였던 지역주의가 많이 퇴색하고 있는 것 또한 탄핵이 가져온 큰 변화다. 그리고 그동안 제왕에 비교될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한국의 대통령이 국회에 의해 견제된 것도 비록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었으나 권력분립적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한편,탄핵사태가 가져온 부정적인 면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 중에서도 우리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 현상은 정치적 안정을 원하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고 앞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수면 위에 떠오른 좌우 대립은 그동안 계속된 경제 침체와 아울러 심화되어 오다가 이번 탄핵을 계기로 더욱 불이 붙은 감이 있다. 이념적 대립은 종교적 대립과 마찬가지로 토론을 통해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탄핵에 대한 반대와 찬성이 선동과 감정적 대립을 수반하여 거리에는 촛불시위가,인터넷에는 상호 비방과 욕설이 가득 참으로써 민주주의의 골간이 되는 준법정신은 실종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외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멀었다는 평을 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는 조화롭고 편안한 것임에 비해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예술에까지 비유될 수 있는 조화롭고 편안한 민주주의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위기로 불리는 현 난국을 타개하는 길은 탄핵의 긍정적 측면을 최대화하고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는 길일 것이다. 유세희 (한양대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국민일보 2004. 4.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