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안된 후보들의 책임 - 박효종
	2004-04-02
'기본' 안된 후보들의 책임 '국민의 최소한 의무'조차 안해 … 유권자에게 의혹부분 설명해야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후보자들의 납세, 병역, 전과 등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후보자 중 상당수가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납부한 액수보다 소득세를 적게 낸 것으로 나타났고, 소득세 10만원도 내지 않은 후보도 적지 않다. 군면제 사유 가운데는 석연치 않거나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총선 때가 되면 매번 이런 문제들이 터져나오기 때문에 이번에 각 당이 사전에 꼼꼼히 챙겼다고는 하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다. 국회의원이란 누군가, 무엇인가를 대표하는 존재다. 양식 있는 유권자라면 인물 선거냐, 정책선거냐, 심지어 탄핵선거냐를 따지기 전에 “누가 나를 대표해줬으면 좋을까”하는 마음을 갖게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라면 맹사성이나 황희 정승과 같은 존재가 ‘나’를 대표하기를 바라지, 연산군이나 네로와 같은 존재가 ‘나’를 대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청백리(淸白吏)나 살신성인의 공익 헌신자가 ‘나’의 대표자가 되기를 바랄지언정, 얌체나 무임 승차자가 ‘나’의 대표자가 되는 데 질색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이 때문에 이런 후보들을 국회에 보내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세금을 안 내거나 턱없이 적게 낸 사람이 적정 세금을 꼬박꼬박 낸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을까. 군대를 애매모호한 이유로 갔다오지 않은 사람이 당당하게 군대를 갖다온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물론 에이즈 환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반드시 에이즈 환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허나 ‘대변’이나 ‘대표’란 피대표자와 일정한 사회적 특성과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이익을 남성 의원이 대변할 수 있다고는 하나, 역시 여성의원이 대변할 때보다는 부족함과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국민 평균을 놓고 볼 때 세금을 석연치 않게 절세한 사람이 ‘편법 절세자’들을 대표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과잉대표’하는 것이고 정상적으로 세금을 낸 시민들은 ‘과소대표’되는 사태를 감수해야 한다. 요즘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요구되는 때도 없다. 나라를 위하여 무언가 해보겠다는 사람이 모범은커녕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경우라면 얼마나 황당할까. 국민의 4대 의무라면 삼척동자라도 익히 알고 있는 사안인데, 선량이 되겠다는 사람이 그런 의무조차 해태(懈怠)하고 어떻게 의무의 차원을 넘어가는 ‘멸사봉공’이나 ‘선공후사(先公後私)’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감동할 것이 별로 없는 척박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하는 것조차 거창한 일이고, 범법자나 편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공직규범을 말하는 편이 적절하다.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들에게 살신성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하고 묻기보다, 최소한 ‘국민의 의무’를 다했느냐는 소박한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선량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공사를 막론하고 국민의 의무에 ‘우선 승차자’가 되어야지 ‘무임승차자’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상대방 후보가 이런저런 말을 퍼트리기 전에 후보들은 스스로 사안을 밝히고 겸허하게 유권자들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거나, 아니면 지역 구민들과 만날 때 세금을 적게 낸 이유, 군대를 안 갔던 이유, 전과자가 되었던 사건을 사전에 공개하고 납득시켜야 한다. 공인(公人) 후보로서 유권자들에게 ‘사전 설명책임’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돌을 던지라’고 외친다면 황당한 일이고, ‘죄인입니다’하는 심정으로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4. 4.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