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캠페인’ 끝내라 - 박효종
	2004-04-01
‘네거티브 캠페인’ 끝내라 오늘까지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선관위에 등록을 마치면 17대 총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예선 진출이 어디 예삿일인가. 경선과 면접 등 온갖 복잡한 절차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여기에 이르렀지만, 숨고르기를 할 여유도 없이 본선 경쟁을 위한 막판 투지를 불사르게 된 것이다. 각 당 후보자들의 입장에서 선거란 무엇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을까? 선수들이 겨루는 운동경기일까? 물론 말로는 상대방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스포츠로 비유하고 싶을 것이다. 누가 선거를 이전투구(泥田鬪狗)와 같은 싸움판이라고 규정할 것인가? 그러나 얼마전 야기됐던 탄핵정국의 격렬성을 보면 운동경기가 아니라 싸움판이었다. 또,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지금 이 총선정국도 탄핵정국의 연장전과 같은 성격이 짙다고 본다면, 영락없는 전쟁터다. 각당의 후보자들은 ‘선수’가 아니라 ‘투사’이며 ‘무사’다. 그리고 각 당의 대표는 경기의 ‘코치’나 ‘감독’이라기보다는 ‘총사령관’처럼 각 전략요충지를 샅샅이 누비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민주선거라고 해서 꼭 운동경기에 비유되란 법은 없다. 오히려 전쟁에 비유되는 것이 더 적절한 측면이 없지도 않다. 그것은 특히 선거 승패의 결과가 갖는 파괴력이 운동경기에서의 승패보다는 전쟁에서의 승패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윈윈’ 상황이나 동반 우승이란 있을 수 없고 한결같이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제로섬게임이 특징이다. 또한, 승자만이 크게 웃을 수 있고 열패감과 쓴맛은 전적으로 패자의 몫이다. 하지만, 선거가 전쟁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도 한 가지 점에서 크게 다르다. 전쟁터에서 정당한 수단과 정당치 못한 수단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야말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곳이 전쟁터다. 승리를 위해서는 살인·음모·속임수 등 어떠한 비열한 수단도 정당화된다. 이기는 것이 선이고 지는 것이 악이라는 것이 전쟁의 철칙이다. 상대방을 멋지게 속여 승리했다면 그 승리는 더욱 더 빛나는 법이다. 그러나 선거에는 엄연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 안에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게임이 민주선거다. 또, 규칙을 지키면서 승리해야 온전한 승리가 된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규칙을 어기는 전형적인 경우를 ‘돈선거’로 규정해 왔다. 그래서 ‘돈선거’를 막기 위해 포상금 제도를 도입했고, 선관위도 밤낮으로 눈을 부릅뜨고 서슬이 시퍼렇다. 그렇다면 돈선거 방지가 만능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돈선거’가 불법·타락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임은 틀림없으나, 그것만이 천민선거문화의 거악은 아니다. 따라서 ‘돈선거’만 차단하면 ‘클린선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오이며 순진한 발상이다. 근거없는 유언비어, 악의적인 중상모략, 없는 말 지어내기 등은 돈보다 더 치명적이다. 그것은 ‘인격모독’을 넘어서서 ‘인격살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악성 거짓말일수록 전파되는 속도도 광속도이기 때문에 정작 당사자는 알지도 못한 채 당하고 또 알지 못하니 해명조차 할 수 없다. 기실 선거운동은 남의 만만한 약점만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주력해서는 안 된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우리 공동체의 질을 고약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정서를 황폐하게 하며, 당사자 및 그 가족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恨)과 상처를 안겨준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근거없는 악성 유언비어(流言蜚語)로 망가진 사람이 어디 하나둘인가? 우리 선거가 사생 결단의 싸움이 아닌 바에야 ‘인격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승리를 목표로 해선 곤란하다. 그런 저급한 방식으로 승리한들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할 터이다. 박빙의 승부처일수록 초조해진 나머지 남의 인격과 약점을 건드리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이려는 유혹에 빠질 공산이 크다. 후보자들에게 당부한다. 이런 유혹에 온 힘을 다하여 강력하게 저항하고 ‘신사게임’을 하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반드시 부메랑처럼 본인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자기 자신의 좋은 점과 강점을 해맑은 얼굴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포지티브 캠페인’도 있다. 부디, 선의로 가득 차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승리를 하든 아니면 패배를 하든 선거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4. 4.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