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지 변경' 갈등불씨 안돼야 - 제성호
	2004-03-22
'파병지 변경' 갈등불씨 안돼야 스페인 열차 테러의 여파로 이라크 파병국에 대한 테러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만간 국군의 이라크 파병지가 당초의 키르쿠크에서 다른 곳으로 바뀐다고 한다. 새로운 파병 후보지로는 스페인이 주둔하던 중남부의 나자프 주(州)를 비롯해 몇 개 지역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병지 변경의 이유로 키르쿠크지역의 치안상황 악화 외에 미군의 공동주둔 및 군사작전(게릴라 소탕 등) 요구를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이 지적되고 있다. 주둔지 변경에 따라 파병규모의 축소 가능성마저 들리고 있다. 미군의 공동작전 요구를 수용할 경우 6개월 동안 30∼70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무엇보다 부대원의 안전에 신경을 쓰는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한 게 무리는 아니다. 국회를 통과한 파병동의안에 평화재건 지원이 파병 목적으로 명기돼 있는 만큼 미국측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새 주둔지를 물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소식에 한·미동맹이 삐걱거린다는 불길한 느낌이 든다. 전투병 파병은 한·미동맹관계를 강화·발전시키기 위함인데, 파병군의 임무·성격과 시기, 주둔지 등을 둘러싸고 오히려 동맹관계를 훼손하게 된다면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양국간의 기 합의사항(키르쿠크지역에서의 한국군 단독주둔과 독자적인 지휘권 행사 등)을 번복하는 등 미국의 책임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동맹국을 도와주고 이를 통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상대방 처지를 이해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정부가 파병도 하기 전에 자국 군대의 안전만 챙기는 인색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부분도 있다. 미국도 어려운 국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전투병 파병을 하는 우리의 입장을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양국이 동맹과 호혜의 정신에 충실할 경우 견해 차를 극복하지 못할 리 없다. 이런 입장에서 출발한다면, 파병의 목적과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측과 주둔지 변경, 치안유지 공동작전, 미군 배속, 군대지휘권 문제 등을 협의해 적실성 있는 타협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파병지 변경시 조사단 파견과 정보수집에서부터 현지실정에 맞는 민사심리전과 장병교육까지 파병계획을 전면 재검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6월경이 돼야 추가파병이 가능하다는 게 실무자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기간을 단축해 이라크 평화정착과 재건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주둔지 변경소식이 알려지자 그간 한국의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에 들떠있던 키르쿠크 사람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키르쿠크 주지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최대한 돕겠다고 말하는 등 현지주민들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불어 넣었으니, 이들의 실망 또한 클 것이다. 만일 “한국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현지주민들에게 널리 각인될 경우, 이는 국군의 이라크 주둔 및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론 한·이라크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주민들에게 반한(反韓) 감정을 부추기거나 우리 국민에 대한 테러를 감행할 소지도 있다. 따라서 지역주민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적절한 설명과 함께 이해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라크 대사가 직접 나서거나 고위급 특사 파견 등 성의를 보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파병반대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 충분한 대국민 홍보를 실시해 파병계획 수정의 불가피성을 설득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이라크 파병계획을 백지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앞으로 정부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이라크 주둔지 변경이 한·미간 및 현지주민과의 관계, 그리고 국내적 차원에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국제법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3.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