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의 1' 게임 - 석종현
	2004-03-10
'10분의 1' 게임 8일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중간발표 결과 한나라 823억원, 노 캠프 113억원으로 그 규모가 밝혀 졌고, 이에 따라 지난 대통령선거는 그 과정에서 거액의 불법 자금이 동원된 불법 선거였음이 드러났다. 불법 자금이 동원된 이상 법리적으로는 당연히 당선 무효가 논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에서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하였기에 그 발언의 책임 여부가 또 다른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노 캠프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이미 초과하였기 때문이다. 야당은 그동안 검찰수사를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에 꿰맞춘 편파수사라며 비난해왔지만, 이제 노 대통령이 사임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나,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은 법률적으로 본다면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왜냐하면 불법 행위에 있어서는 그 양보다는 범죄 구성요건의 충족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범죄가 성립하게 될 경우 그 자체로서 이미 처벌받아야 할 행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검찰수사 발표를 통해 사실로 확인된 지금 발언 이행 여부에 대한 법적 책임도 새삼 문제가 된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법리적으로는 확약을 의미하며, 확약은 자기 구속력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 학설의 입장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발언하였기 때문에 행정관청으로서 대통령은 그의 발언에 구속될 수 있다. 법조인 출신의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이 지닌 법적 의미를 몰랐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은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놓은 ‘차떼기 당’론 혹은 ‘4급수·2급수’론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부당한 일이며, 국민정서 상으로도 대단히 민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여당측은 그동안 야당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위에 선 것처럼 주장해 왔지만, 아직도 여당의 불법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노 캠프에 제공되었던 불법 자금의 규모를 지금 정권 하에서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어 권력의 향배에 극히 민감했다. 그런 기업들이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는 야당 후보에게는 거액을 제공하면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여당 후보에게 10분의 1 정도의 인사치레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야당 후보에게 한 것만큼의 액수는 제공해야 후환이 없다고 기업들이 판단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사실 불법 대선자금 문제는 여야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드러난 액수의 비율을 가지고 여당측이 상대적인 도덕적 우위를 주장한다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이제 돼지저금통으로 모아진 성금만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주장이 거짓임이 밝혀진 마당에 구태여 오십보백보의 고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야 간의 불법 자금 비난은 국민에 대한 기만적 선전에 불과하다. 말장난으로 자신들의 불법을 희석시키고 깨끗함을 가장하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지금 노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이 113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그것은 법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 이를 정치적 술수로 국민을 호도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법치국가에 있어 법의 준엄함을 존중하는 해법을 노 대통령이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석종현 (단국대 법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3. 1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