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 해법’ 문화산업서 찾자 - 전택수
	2004-03-05
‘이태백 해법’ 문화산업서 찾자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의미의 ‘이태백’. 오늘날 우리나라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일류 선진국에서도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말이 많다. 일본에서는 청년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잠시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스러운 실업 상태로 남는다 해서 ‘프리타족(freeter族·free Arbeiter)’이라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청년들이 부모의 품 안에서 실업 상태로 기생한다 해서 ‘캥거루족’이라 부른다. 정부는 청년 실업의 사회적 심각성을 깨닫고 올해 5400억원을 들여 이태백을 줄일 각종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건설적인 대안도 있지만 시대착오적이며 분배적 성격이 강한 대책도 많다. 대표적으로 공무원, 군하사관, 국회의원 인턴 등을 증원하고, 공기업으로 하여금 현 인원의 5%를 해마다 추가 채용토록 하는 것 등이다. 이들은 이태백 해소책 중에서도 최하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 주라고 정부에 뼈아픈 충고를 한다. 잡은 고기를 주는 것은 이태백들의 의존성을 높이는 것으로서 실업 해결의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매우 적절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충고도 문제의 본질 가운데 절반만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 즉, 기존의 일자리에 알맞게 청년들의 자질을 높이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태백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머지 반, 즉 낚시터에 청년들이 좋아하는 고기가 많이 살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청년들이 좋아하는, 그리고 잠재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기업 활동의 여건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청년들이 선호하지 않는 일자리를 아무리 많이 제공해도 이태백 해소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태백을 해소하는 일자리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세계 경제의 환경 변화와 청년들의 취향 및 장점을 파악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환경 변화로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 인터넷망의 확장, 소비자 취향의 다양화, 창조성의 중요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영세 기업의 주도적 역할 등이다. 다음으로, 청년들은 소프트한 일거리를 선호하며,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톡톡 튀는 창조적 행동을 보인다. 이상의 조건을 반영하는 분야를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볼 수 있다. 먼저, 그 후보로서 전통적인 제조업은 어떤가? 제조업 자체로서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신규 일자리는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 지난 수 년간의 통계다. 그러나 제조업은 영원한 것. 제조업을 살리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조 상품에 문화예술의 상징성과 심미성을 담아야 한다. 이 과정은 자동화될 수 없으며, 과정마다 문화예술로부터 창조성에 대한 조언을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은 높은 인건비 때문에, 중국이나 태국 등은 문화적 이해의 부족 때문에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둘째, 문화산업은 어떤가? 이미 선진국에서는 문화예술 및 문화산업이 정보기술(IT)의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 및 경제학 교수 등으로 구성된 한 국가위원회는 2003년에 펴낸 보고서에서 IT와 예술의 결합으로 탄생된 창조성이 타 분야의 창조성을 유발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유네스코는 문화예술 및 문화산업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실증적 사례를 보여 주었다. 이에 따르면 1980년대 영국의 전체 일자리는 불변인데 문화 분야는 14% 늘었고, 프랑스의 문화 분야 고용 증가율은 전체 증가율의 10배를 웃돌았다. 셋째, 선조들의 생활 지혜가 담긴 전통적 생활 문화에 첨단 기술을 접목한 분야는 어떤가? 조상의 생활 지혜가 IT 및 바이오기술(BT) 등과 결합하여 고기능성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고소득층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다. 지방마다 특색있는 음식 비법, 건강 및 치료 비법, 자연적 특산물 등이 이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문화정보의 발굴 및 수집에 이태백을 투입할 것을 제안한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전통문화를 발굴·수집하는 일이다. 이렇게 축적될 문화정보는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대안들의 원천이 된다. 더구나 정보전쟁의 시대에서 인터넷에 자국 문화 콘텐츠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으면 자국 언어는 서서히 소멸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전택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시민회의 문화예술포럼 정책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3. 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