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 깨진 ‘난장판 주총’ 유감 - 김정호
	2004-03-02
룰 깨진 ‘난장판 주총’ 유감 주주총회는 경영자와 주주가 같이 즐기는 축제여야 한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경영 실적이 좋아서 주가가 많이 높아진 회사의 경우는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잘한 일을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더욱 잘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총장에서 주가를 많이 높여준 경영자들을 격려해 주는 것은 주주들 자신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증권브로커들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즉, 투자를 잘해서 수익을 많이 돌려준 브로커들에게는 당초에 약정한 수수료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곤 한다. 그러나 주주총회장은 그러하지 못하다. 좋은 경영 실적과 높은 주가에 대한 칭찬은 찾아보기 힘들고, 잘못한 데 대한 질책의 목소리만이 주총장을 가득 메운다. 부실 경영자에 대해서 그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왜 실적이 좋은 회사까지 그렇게 될까. 주총장에서의 발언권이 의결권의 숫자와는 무관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주주일수록 경영을 잘해서 주가를 높여준 경영진을 고맙게 생각할 가능성이 짙다. 주가와 별로 관계없는 사소한 잘못은 덮어주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도 신이 나서 주가를 더 올려 주지 않겠는가. 반면, 주식 수가 적은 사람일수록 주가 이외의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강해진다. 주가 상승 이익 중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회사에 자신이 원하는 다른 일을 요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문화 활동이나 빈민구제사업에 더 많은 기부를 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짙어진다. 돈 많이 버는 기업보다는 ‘옳은’ 기업 또는 ‘선한’ 기업이 되길 요구할 수도 있다. 필자는 이처럼 주주들이 서로 다른 것을 경영진에 요구하기 때문에 주주총회가 갈등의 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해 둘 것이 있다. 주주총회는 다수 주주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여기서의 다수는 단순한 주주의 숫자가 아니라 의결권의 숫자를 뜻한다. 1주씩을 가진 사람 1만명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1만5000주를 가진 한 사람의 의견을 누를 수 없는 것이 주주총회의 규칙이다. 그 이유는 주총의 존재 이유가 회사로 하여금 열심히 돈을 벌게 하는 데에 있지, 옳은 일을 하는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결권의 숫자가 작은 사람일수록 전체 주식의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이 약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다수 상장사의 총 주식 수는 쉽게 1억주를 넘는다. 삼성전자는 1억5000만주, SK텔레콤은 8200만주, 국민은행은 3억3000만주, KT는 2억8000만주이다. 그 가운데서 1주 또는 10주를 가진 사람의 의결권은 전체 의결권 숫자의 0%에 거의 가깝다. 그의 발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그런데 그 한 사람의 발언이 과연 다른 수억 주의 의결권을 대리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러기 어렵기 때문에 주총에서의 의사결정권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출자액의 크기에 비례해서 이루어진다. 이같은 원리는 주주총회의 진행 방식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주주총회 시간도 회사의 재산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주총회에 배정할 것인지도 다수 의결권의 지지를 받아 결정할 일이다. 그리고 다수 의결권의 지지를 받아 선임된 주주총회 의장은 주주총회 시간을 누구에게 얼마나 배정할 것인지에 관해서 합법적 권한을 갖는다. 따라서 의장의 진행을 따르는 것은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주주들의 당연한 의무다. 만약, 진행이 위법하다고 생각하면 소송의 길이 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총장에서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는 것을 본다. 주주총회에도 규칙이 있고, 그 규칙들은 고성과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만들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불상사가 생기는 것은 누군가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수 의결권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국회의원들이 회의장에서 욕설을 하고 멱살잡이를 하는 것도 결국 규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의 진행에 따르고, 그 진행에 문제가 있었다면 별도의 이의 제기 과정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야 물리적 충돌을 막을 수 있고, 의정의 중단도 막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절차를 따르는 일은 본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국회를 욕하면서도 주주총회 참석자들은 국회의원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3.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