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방치한 '총선올인' - 류동길
	2004-02-24
경제위기 방치한 '총선올인' 취임 1년을 맞는 노무현정부의 국정 운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많은 일을 했다고 자찬하는 청와대측과 낙제점을 주고싶은 국민 대부분의 시각은 물론 엇갈린다. 지난 1년은 국민노릇하기 참으로 어려웠다. 경제 침체, 정치 혼란, 사회 갈등, 외교안보 불안 등으로 국민은 편할 수 없었다. 2%대로 주저앉은 성장, 9%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과 400만명에 가까운 신용 불량자만으로도 경제난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계 환경 탓이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 물려 받은 유산 탓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는 현안 해결 지연과 정책 혼선, 국정 우선과제의 불분명 등에서 보듯이 경제를 살리려고 힘을 쏟은 흔적이 없다. 일자리가 계속 줄어든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다급한 정부는 앞으로 5년 간 일자리 200만개 창출 계획을 발표했다. 일자리를 창출할 구체적 방안도 없이 희망 사항을 열거했다. 그래서 총선을 앞둔 ‘장밋빛 정책’이라거나 일자리 숫자놀음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과 기업인은 지금 뛸 형편이 아니다. 경제와 국정을 챙겨야 할 부총리와 각료들, 청와대 참모들이 총선에 동원됐다. ‘총선 올인’이라는 비판도 있다. 올인(all in)은 한판에 모든 걸 건다는 도박판에 쓰이는 말이고 그 말에는 빈털터리라는 뜻도 담겨 있다. 잘못되면 나라는 거덜난다. 국정보다 국회의원 몇 자리가 더 중요할 수가 없다. 장관이든 청와대 참모든 총선에 출마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출마가 과연 그들 개인의 선택인가. 정부가 총선에 매달리면 그 후유증은 오래간다. 김대중정권이 2000년 총선을 의식,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을 국민에게 과시하고자 섣불리 경기부양책을 썼다. 그 과정에서 신용카드가 남발됐고 그때 이미 신용불량자는 잉태됐다. 얼마나 값진 교훈인가. “나는 당선된다 해도 나를 뽑아준 선거구의 이해관계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겠다. 나는 국회의원이 될 개인적 욕망이 전혀 없다. 나는 선거 비용을 얻으려고 돌아다니지도, 스스로 부담하지도 않겠다.” 국회의원 출마자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자유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요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1806~1873)은 그런 말을 하고 하원의원에 당선, 선거혁명을 이끌었다. 1865년 당시 영국의 선거 부정은 극심했고 유권자의 매수와 불법 타락선거가 만연됐던 때였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 통과 과정에서 보여준 이른바 ‘농촌당’ 의원들의 행태와 선거자금을 둘러싼 시비를 보면서 밀의 자서전을 다시 꺼내 읽었다. 농촌과 나라를 살릴 생각은 접어둔 채 쌀 개방도 FTA도 반대하면 농민과 농촌이 살아날 것이라는 헛된 꿈을 농민들에게 팔면서 표 계산을 하는 게 우리의 선량들이다. 정치는 쇼와 코미디처럼 변질되는 것 같다. 대통령은 당적이 없는데 열린우리당은 ‘정신적’ 여당이라고 한다. 한때 ‘정신적 대통령’이란 말은 있었지만 정신적 여당은 어떤 것인가. 대중 매체에 잘 알려진 얼굴을 정치판으로 몰아내는 것도 쇼에 다름 아니다. 소위 ‘얼짱’ 정치라고 빗대는 게 그거다. 정치를 말과 얼굴로 하는가. 93년 이후 세 번이나 총리직을 맡았던 캐나다의 장 크레티앵은 안면 근육 마비로 입이 비뚤어져 발음이 어눌했다. 선거 유세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가 언어장애가 있다는 건 치명적 결점”이라는 지적에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거짓말은 안 합니다”라고 응수했다. 우리의 대통령은 본뜻이 어떻든 이러저러한 발언으로 많은 논란과 혼란을 빚었고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쳤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는 중천금(重千金)이다. 현란한 말보다 어눌해도 품위 있는 진실한 말 한 마디가 값진 게 아닌가. 대선자금 722억원 대 0원은 어떤 경기에서도 나올 수 없는 스코어다. 건전한 야당이 없으면 국민은 불안하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지리멸렬(支離滅裂)이다. 그러고서도 국민의 선택을 기대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국민은 경제가 어렵고 실업자가 늘었다고 절망하는 게 아니다. 서둘러 사회를 통합하고 경제에 전념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싶은 것이다. 그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한다. 우리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2. 2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