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기본구상 있어야 - 사공일
	2004-02-23
통일의 기본구상 있어야 신체조건이 비교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한때 세계 남자 프로 골프계를 석권한 바 있는 게리 플레어는 “연습을 많이 하니까 이상하게도 항상 운(運)이 따라 주더라”라는 명언으로도 유명하다. 목표 달성을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평소에 쌓은 실력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지난 12~13일 조선일보와 주요 국내외 학술기관 주관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던 ‘북한문제 국제 심포지엄’에서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북핵문제의 해결과는 별개로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대비한 단기적 위기관리 방안을 마련해두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북한에는 군사쿠데타나 민중봉기와 같은 정치적 이변의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경제체제의 진정한 개혁과 개방을 위한 혁명적 조치가 없는 한 경제 파탄에 따르는 체제적 붕괴의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과 동구권에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대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스탈린식 공산주의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는 북한이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적게는 60만~100만명(총인구의 3~5%), 많게는 150만~300만명(총인구의 7.5~15%)에 달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인구의 3분의 1이 외부 식량 원조로 연명하고 있는 나라의 기존 체제가 무한정 유지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 유사시를 대비한 단기적 위기관리 방안은 좀더 긴 안목의 남북한 통일 기본 구상을 기초로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현재 거의 10대1에 달하는 소득 격차를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줄여나갈 것인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행정과 통화제도 측면에서 1국2체제(一國二體制)를 도입할 것인지에 관한 입장부터 정리되어야 한다. 또한 남북한 소득 격차의 점진적 축소 방안은 북한 주민의 대량 남한 유입에 따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워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미래 기대소득을 상당한 수준까지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민간 투자가 이룩될 수 있도록 하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주로 우리 정부와 국제금융기구의 투자자금에 의한 상당한 수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재정의 건전성과 긴밀한 국제 협력체제의 유지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외세(外勢)에 의해 분단된 남북한의 통일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룩해 내려면 주변 강대국들의 협조와 지원을 얻어낼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의 강화 또한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흥미롭게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한 달 전에 방한한 빌리 브란트 옛 서독 수상은 통독(統獨) 시기를 묻는 질문에 통독은 남북한의 통일보다 오히려 늦어질 것으로 예견했다. 그 이유로 통독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얻기가 한국의 경우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통독 당시 서독 리더십은 미국의 전적인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주변국들의 큰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통독을 이룩해낼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부디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개방하기 위한 대변혁이 일어나 우리의 위기관리 방안만은 쓸모없게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4. 2.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