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 제도’ 보완돼야 한다 - 이성호
2004-02-02
‘평준화 제도’ 보완돼야 한다 일전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발표한 내용 때문인지 요즘 평준화 제도가 언론 매체의 인기 있는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대개의 사회과학적 연구가 그렇듯이 그 결과라는 것은 입장에 따라 아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더욱이 필자가 상세히 알지도 못하는 연구에 관해 논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런데 서울대의 연구 결과가 어떻게 해석되든 간에 필자가 보기에 분명한 사실 하나는, 현행 평준화 제도에 대한 불만이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교사들, 심지어는 학생들 사이에도 상당히 확산돼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평준화 제도는 그것이 표방해 온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평준화 제도의 도입 배경은 과열된 입시 경쟁과 그로 인한 과외의 창궐에 있었다. 즉, 나이 어린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켜주고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과외를 억제하는 것이 평준화의 취지였다. 그렇다면 30년 넘게 시행된 평준화 제도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를 했는가? 중등학교 진학 시에 유예된 입시의 부담은 고스란히 대학으로 전가됐고, 사교육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난 규모로 증가했으며, 과외를 받는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다음으로, 대폭적인 수정이나 보완 없이 유지돼 온 평준화 제도로 인해 학교 교육이 부실화되고, 이에 따라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신이 증대돼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학부모와 학생들을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든 원인이다. 사실 필자는 능력이나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로 구성된 이질적인 학급을 담당해야 하는 교사들을 한편으로는 존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은 자칫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기 쉬우며 이에 따라 학생들은 학교 교육에 관한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교육의 효율성을 인정하는 주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학원 강사나 과외 선생들이 일반 학교 교사들보다 우수하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오히려, 사교육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모여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 평준화 제도에 대한 변론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선 평준화가 평등 교육의 이념에 부합하는 제도라는 주장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평등교육을 공정한 교육의 기회와 조건으로 해석할 때, 과연 평준화가 이 같은 평등의 구현에 이바지해 왔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만일 평준화가 기회 균등을 위한 장치라면, 좋은 사교육을 받는 것이 진학에 훨씬 유리한 현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또 다른 변론은, 평준화 실시 이후 학력이 저하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설령 그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는 사교육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끝으로, 위에서 열거한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평준화 제도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선발과 경쟁 체제에 있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선발과 경쟁을 없애야 하는데,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선발과 경쟁은 현대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능력이나 노력에 관계없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원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더구나, 선발과 경쟁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결론을 내려보자. 인간이 만든 제도가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단한 연구와 노력을 통해 보다 많은 수혜자에게 보다 큰 만족을 줄 수 있게 개선할 수는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현행 평준화 제도는 수혜자나 만족도의 측면에서 볼 때 무엇을 위해 존속되는 제도인지 분명치 않으며, 따라서 대폭적인 보완과 수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선책으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수준이나 능력에 따른 교과 운영이고, 다음으로 사립 학교의 자율성 강화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교육 활동 전반에 걸쳐 사립 학교의 자율을 허용하는 대신, 현재 사립 학교에 지원되는 재정을 공립 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어떤 개선책이든 분명한 점은, 그것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입안되거나 추진돼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교육은 인기와 표를 노리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호 (한림대 교육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2.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