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괴롭히는 게 개혁인가 - 김병주
	2004-01-28
기업 괴롭히는 게 개혁인가 훌륭한 앙상블은 단원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제 소리를 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각기 제멋대로 고저장단의 음을 내면 화음이 아니라 소음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가 그꼴이다. 지휘자가 악단 구성원 대다수의 악 보와 다른 악보를 보고 있다. 교수들의 자리는 연구실이고 강의실이다. 그들이 낼 목소리는 논리로 다듬어져 주로 논문 형식으로 피력돼야 제격이다. 왜 그들마저 제 자리 를 벗어나 시국선언문을 낭독해야 했는가. 그것은 시국이 정상이 아니라는 인식의 확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 최하위권에서 선진국 대열 문턱까지 올라선 유일한 경제인 한국경제호(?)가 지난 10여 년 간 표류를 계속해 왔다. IMF 구제금융 이후 다시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선장은 잠들어 있다. 선잠에서 깨어난 때에는 일부 선원들이 나머지 선 원들을 내몰자는 목소리에 귀가 쏠려 해도(海圖)를 읽을 틈이 없다. 그 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국제 경제 여건이 급변하고 있다. 광복 이후 경제를 살린 최상의 대통령으로 인정받던 박정희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시대 흐름을 잘 읽은 덕분이었다.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만 해도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건재하고 미국 시장이 개도국에 활짝 개방돼 있었다. 대다수 후진국은 수출 주도 성장전략의 이점에 눈 멀어 있었다. 중국 대륙은 공산 이후 '대약진'과 홍위병 난동에 함몰돼 있었다. 선진국 시장이 열려 있고, 대다수 개도국이 어리석은 꿈에 빠져 있는 바로 그 때가 한국이 눈 뜬 지도자(비록 비민주적이었지만)와 의욕 있 는 기업인들이 힘을 모아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는 호기였다. 고도성장 의 빛 아래 분배 불균형의 그림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그림자 속 절대빈곤의 자취가 사라지고 상대빈곤이 심화되었다. 서명 교수들은 시장경제 시스템이 인간의 머리 속으로 그릴 수 있는 공 상의 체제로서 최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 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 가운데 그보다 나은 체제가 없다 는 경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시장에 잘못(실패)이 있대도 그 것을 깊숙한 정부 개입으로 풀다가는 더 큰 잘못(정부 비대, 비효율, 성장잠재력 잠식 등)이 따른다는 동구권의 경험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장 회자하는 말은 '개혁'이다. 그렇다. '개혁'은 옳은 말이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로'에 있다. 시장경제의 핵 심인 경쟁원리와 법질서마저 뒤흔드는 요즘의 개혁은 개선이 아니라 개 악이다. 정치권은 '올인'의 승부를 노리는 도박판에 머물러 있다. 이익집단들의 이기주의에 따라 춤추는 표심을 겨냥하는 정치인들에게 경제논리, 공개 된 원칙은 없고 흥정과 타협의 뒷거래만 있을 뿐이다. 세계 각국이 집단적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글로벌 시대에 밖으로 향할 눈이 국내 문제로 몰려 있고, 긴 안목은 실종되고 근시안이 판을 친다. 경제의 뒷받침인 외교와 안보에 있어서 '자주'가 우리를 국제 외톨이로 만들고 있다. 국민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인 기업(인)에 곤욕을 치르게 하고 있고, 그 것을 개혁이라 부른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 욱박에 질려 자금을 떼인 기업인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높은 자리에서는 왜 기업인 이 불안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다지만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할 기 업인들이 국내의 높은 규제와 조세 등 장애물 외에도 또 하나의 족쇄가 손발을 묶고 있다. 세계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 데도 말이다. 노동귀족들이 지배하는 조직화된 소수의 노동자들이 다수의 이익을 저 버리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사회고질화되고 있다. 중국의 평균임금보다 10배 이상 높은 급여를 받은 노조원들이 기업 내 부에 자리해 노동시장에 갓 나온 신참자들의 취업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 올해는 미국 경제가 4% 수준의 경제성장이 기대되고 있는 등 수출시장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그래서 1월 수출실적이 좋다. 국제 원자재 가격 이 올라 국내 물가 오름세가 우려된다. 전반적으론 지표상 올해 경제실 적은 작년보다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루살이가 아니듯 국민경제는 1년살이가 아니다. 작금 의 정부ㆍ국회ㆍ노조ㆍ기업들의 행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성장잠재력 은 악화 일로를 달리게 돼 있다. 없는 위기를 '위기'라고 외치는 늑대 소년의 비웃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교수들은 경제가 풀리고 졸업생들에게 취업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보며 본래의 연구실로 되돌아가고 싶다. 본래의 소리를 되찾아 화합의 앙상 블을 이루는 사회 일원이고 싶다.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04. 1.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