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술은 새부대에 - 이달곤
	2004-01-02
새술은 새부대에 대선자금 비리로 얼룩진 채 새해를 맞았다.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그 언제보다도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국민들의 기존 정치에 대한 분노는 거세고 개혁의 결의도 상당히 높다. 새해는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의 실험기일 것이다. 행정은 그런대로 안정된 상황이고 지방자치제도 몇몇 단체장의 총선 출마로 약간의 동요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은 새로운 술을 담는 데서 출발한다. 인적 교체는 효과적으로 대안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그동안 진행된 정치부패, 정쟁과 당쟁, 저질과 낭비적 정치는 특정부류의 정치인에 의해 저질러져 왔다. 그들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어떤 집단에서나 시종 나쁜 일을 획책하는 핵심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종기의 핵에 해당하는 정치인의 교체로 새로운 정치의 출발이 가능해진다. 그다음으로는 부대도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정당의 민주화는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정책정당으로의 변신은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 항상 행정부에 따라다니고 집단과 지역의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난 20년간 이 눈치 저 눈치로 좌불안석하며 눈치만을 보는 ‘좌불안 안동(坐不安 眼動)’ 정치인은 많았지만 애국과 봉사를 실천하는 위대한 정치가는 탄생하지 않았다. 이제는 정책으로 승부하게 하여야 한다. 주민의 대변기능이 감성으로 흐르지 않고 전문성에 따라서 처리되기 위해서는 전국구가 더 늘어나야 하고 지역에서도 전문가 자질이 보이는 일꾼을 선택하여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변하고 국정이 변하며 높은 생산성으로 서비스하는 국회가 된다. 정당이 정책정당으로 변하는 방향에서 제도적인 개혁이 지속되어야 하는 동시에 정치자금을 축소할 수 있는 제도를 이번에는 실현시켜야 한다. 선거구의 규모, 지구당 존폐, 선거활동, 공영제 확대 등을 통하여 국회의원의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에 조직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객과 정치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을 줄일 수 있다. 국회의 제도적 개혁도 가속해야 한다. 상임위나 소위의 운영을 전문성 위주로 강화하고 상임위가 정책문제를 분석하고 정부부처와 해결책을 짜내는 진지한 국정토론의 장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인 국민도 변해야 한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이번만은 그냥 넘기지 않는다”고 외쳐왔지만 막상 선거가 실시되면 그 과정에 동원되면서 선거결과는 실망으로 연결된 지 오래되었다. 이제 정치는 국운을 가로막고 있는 흉물로 변했다. 이번에 고치지 못한다면 또 4년을 허송한다. 앞으로 당면하고 있는 4년은 과거의 10년에 해당한다. 중국의 부상이 그렇고 정치경제 환경의 변화가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의 주인인 국민 의식의 변화 없이는 새 술을 찾는 것도 부대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민은 정치인들로부터 요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정치인이 권력자이고 그들 밑에 국민이 있다는 식의 일부 전통적 위계인식을 과감하게 탈피하여야 한다. 이제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서비스맨이다. 그들에게 깨끗한 정치를 하라, 정쟁을 중지하라, 국정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활동을 하라 등등으로 엄연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주인의식의 회복과정에서 시민사회 단체와 언론의 역할이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국회를 비롯한 선거직 기관을 모니터링하여 잘하는 정치인과 못하는 정치인을 철저하게 분별하고 이를 상시 공개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는 선거공영제의 차원에서 지원되어야 한다. 언론도 가십성의 기사나 소설식의 추리에서 벗어나 정치투명화를 위해서 좀더 밀착 취재를 해야 할 것이다. 이달곤 (서울대 정책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1.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