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의 법의식 유감 - 석종현
	2003-12-23
盧대통령의 법의식 유감 노무현 대통령 당선 1년을 맞아 각종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으나, 필자는 법학교수이므로 노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법의식을 짚어보기로 한다. 노 대통령은 판사와 변호사를 지낸 법률가이다. 지난 대선의 유력 후보자 모두가 법률가 출신이어서 누가 당선되든 법치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 들춰지는 불법 대선자금 조달의 실상은 그 같은 희망과 낙관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적절한 사법적 조치를 통해 선거풍토 쇄신의 희망을 품어볼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정작 대선 승리자인 노 대통령의 권한 행사 행태나 언동을 통해 짐작되는 그의 법의식에 대해서는 별로 희망을 느낄 수 없는 점은 참으로 유감이다. 우선 노 대통령이 국가원수라는 헌법상의 지위에 대한 법의식이 확고한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면서 행정권 수반을 겸하는 것인데, 행정권 수반으로서는 국회와 법원의 견제를 받는 입장이므로 정파적 입장에 설 수도 있으나, 국가원수로서는 정파적 입장을 벗어나 대립하는 이해를 조정하는 포용적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 대통령이 가지는 이 두 가지 지위는 사안별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안 처리의 진전 과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특검법 거부 파동의 경우에서 보듯이 국회가 이미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한 법안이면 싫더라도 국가원수로서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하고, 근소한 표차로 가결된 법안이라면 정파적 입장에서 거부하는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국회와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대립각을 접고 이를 포용하는 고뇌에 찬 결단을 보여줄 수 있어야 비로소 비지지계층에 다가서고, 이를 잘 활용하면 소수파 정권의 순항을 기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 승리 1년을 맞아 자신을 지지한 정파를 모아놓고 그들의 환호 속에 비지지계층에 공공연히 적대의식을 드러내는 대통령에게 이해의 조정이나 포용적 태도는 참으로 무망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노 대통령에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가치이며, 이 점에는 헌법학자들의 견해가 일치되어 있다. 따라서 헌법은 모든 공직자와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충성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헌법 아래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정파의 정치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또한 헌법은 같은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취지에 반대하는 공직자라면 헌법이 부여한 공직을 떠나야 하고, 공직을 떠난 상태에서 개헌운동에 투신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개헌’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꾸는 것이라면 헌법학적으로 ‘개헌’이 아니라 ‘혁명’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 자신이 공산당 활동의 합법화를 언급하는가 하면, 대법원이 수차 반국가단체로 확인한 한총련을 감싸는 발언을 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밝힌 적이 없는 것은 그가 참으로 우리 헌법이 최종적으로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에 공명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더구나 대통령에게 기운 일부 언론과 추종세력들은 걸핏하면 ‘혁명’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 않는가. 법률가 출신의 대통령이 헌법상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든지 헌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확신이 불분명해 보이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고, 오늘 우리가 겪는 혼란도 근본적으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석종현 (단국대 법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