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부르는 입찰제도 - 박재완
	2002-06-03
부패 부르는 입찰제도 지방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4년 동안 지역과 동네를 이끌어갈 리더를 뽑는 대사인 데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썩 내키지 않는다. 민선 2기 단체장 5명 중 1명 꼴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사법처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월드컵 행사를 지휘해야 할 광역단체장은 5명이나 형사처벌을 받게 돼 국제적인 망신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불법 비자금 파이프라인 기소된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절반 이상은 수뢰 혐의를 받고 있으며, 또 그 태반은 자치단체가 발주한 건설공사를 매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뇌물수수죄로 처벌된 국회의원이나 정부투자기관 임직원들의 경우도 사연은 비슷하다. 건설공사가 불법 비자금의 파이프라인으로 둔갑한 셈이다. 선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뇌물을 받고, 당선되면 보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공사를 맡기는 것이다. 때로는 불요불급한 공사마저 빚을 얻어서까지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건설공사가 부패의 온상이 되는 이유는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제조업에 비해 품질관리와 성과평가가 어렵고, 투입되는 인력과 자재도 불투명하며, 공정의 상당 부분을 하도급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불합리한 입찰제도가 건설업계의 기술경쟁과 원가절감 노력을 저해하고 오히려 담합과 부패의 관행을 유발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건설공사에서는 적격(PQ)심사를 통과한 복수의 업체를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통해 최저가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행이다. 비단 공공건설공사뿐만 아니라 민간건설공사와 물자를 구매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최저가 낙찰제가 통용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최저가 낙찰제보다 '네덜란드식 입찰(Dutch Bidding)'로 알려진 차저가 낙찰제가 더 합리적이다. 차저가 낙찰제는 최저가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하되, 낙찰가는 두번째로 낮은 입찰가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최저가 낙찰제는 최저가로 공사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업체가 좀 더 이윤을 얻기 위해 전략적으로 투찰(投札)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최우수업체가 탈락하고 덜 효율적인 업체가 시공을 맡게 되면 사회적으로 손실을 보게 된다. 반면에 차저가 낙찰제를 적용하면, 자신의 입찰가가 낙찰가를 직접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입찰자는 솔직한 가격을 써내게 되고, 따라서 최우수업체가 낙찰자로 결정된다. 막강한 선단을 기반으로 17세기에 5대양을 주름잡던 세계 무역의 중심지 암스테르담 거상들의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제도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부는 차저가 낙찰제는 고사하고 최저가 낙찰제조차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 예정가격의 일정비율을 초과하는 입찰가 중 최저가를 낙찰가로 결정하는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최저가 낙찰제는 과당경쟁을 유발해 부실공사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는 부실시공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제가 부실시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의 졸속 수립, 허술한 감리.감독과 부패가 부실시공을 유발한다고 보아야 한다. 시공.보증 시장에 맡겨야 이런 여론을 의식했던지 그나마 지난해부터는 1천억원 이상의 PQ공사에 한해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낙찰률이 예정가격의 60% 전후에서 결정돼 종전보다 훨씬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자 정부는 느닷없이 건설업계의 경영난이 우려된다면서, 70% 이하로 낙찰된 업체는 선급금을 절반으로 감액하고, 향후 PQ심사에서 신인도를 최고 3점까지 감점하는 규제를 신설했다. 이는 최저가 낙찰제의 본질을 훼손하는 편법이다. 이런 낡은 규제가 계속되면, 결국 건설업체들은 기술개발이나 원가절감보다 예정가격을 파악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싼 가격으로 입찰해 정부예산을 절감하면 도리어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부실시공 문제는 감리.감독 강화와 건설보증시장 개방으로 풀어야 한다. 선진국처럼 건설업체의 주거래은행이 보증을 담당하면 부실업체의 입찰 참가를 배제할 수 있다. 시장에 맡기고 상식대로 처리하면 될 터인데, 온갖 걱정을 다하면서 이런저런 규제를 양산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朴宰完 (성균관대 교수, 행정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6. 3 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