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전범재판과 정당성 - 제성호
	2003-12-16
후세인 전범재판과 정당성 12월 13일 사담 후세인이 그의 고향 티크리트 남쪽 외딴 농가에서 미군과 이라크 경찰의 합동 생포작전(‘붉은 새벽’작전)에 의해 마침내 체포됐다. 이라크를 침공한지 268일 만에 미군으로선 최대의 전과(戰果)를 올린 셈이다. 지난 5월 1일 부시 대통령의 작전종료 선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후 7개월여 동안 이라크 저항세력이 벌이는 테러 및 게릴라전에 시달려 왔다. 그 중심에는 후세인이 있었다. 때문에 이번 후세인의 체포로 이라크 내 테러 공격은 한 풀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후세인 생포가 이라크의 정치 안정과 민생 회복, 전후 복구 사업을 가속화시키고, 중동의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얼마든지 반미 항전(抗戰)의 구심점이 다른 인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 이라크 문제 해결에 있어 중대한 고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세인의 사법 처리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지난 7일 후세인과 그의 보좌관 등 전현직 관리 수백 명의 반인권적 범죄를 심판할 전범재판소 설립을 위한 법률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후세인의 전범재판은 이라크전 개전 때부터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이란과 쿠웨이트 침공,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이라크 국민의 강제 실종, 대규모의 정치범 암살 및 인권 탄압, 유엔 안보리 결의 제687호 등의 지속적 위반은 그에게 씌워져 있는 죄목이다. 이번 후세인 전범재판은 뉘른베르크(1945), 도쿄(1946), 옛 유고(1993), 르완다(1994), 국제형사재판소(2002)로 이어지는 국제 전범재판과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이라크 국내 법정에서의 전범재판이다. 따라서 미국과 이라크 과도정부는 후세인을 단죄함에 있어 몇 가지 사항에 유념해야 한다. 우선, 후세인에 대한 전범재판이 서구식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가 아니라 국제적 정의가 실현되는 장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 등 확립된 국제법규와 이에 합치되는 이라크 형법에 따라 적법한 재판을 해야 한다. 또한, 이라크인의 주도 아래 공개리에 전범재판을 실시하고, 미국은 가능한 한 직접개입을 자제해야 한다. 나아가 전범재판의 결과를 유엔 안보리에 보고하고 추인을 받는 등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후세인 전범재판은 국가원수가 행한 대량학살, 인권유린, 침략전쟁 등의 국제범죄를 처벌하는 21세기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 동안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법정에 세우려고 했지만, 결국 인권보호 규정에 걸려 실패로 끝났다. 현재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옛 유고 전범재판소에 기소돼 있기는 하지만, 엄중한 처벌이 행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후세인 재판은 자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들을 국제사회가 단호하게 응징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후세인의 전범재판이 진정 이라크인에게 의미를 가지려면 어두운 독재 시절과의 단절(과거청산) 및 정치 민주화를 본격 추진하는 전기가 돼야 한다. 또, 이라크인에 의한 자주적 통치(민족자결)를 실현하고, 폐허로 변해 버린 이라크를 국제사회와의 협력 아래 재건하는 출발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미국의 군사행동 및 현지 개입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미국과 이라크 과도정부는 앞으로 전범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고, 후세인을 철저하게 단죄해야 한다. 또한, 민정이양을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지체 없이 실행에 옮겨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이라크사태를 조속히 진정시키고 중동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유엔의 보다 많은 참여와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점령군적 성격을 탈색하고, 유엔 기치 아래의 평화유지군으로 그 임무를 바꾸어야 한다. 이라크 파병에 상당한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정부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말고 이른 시일 안에 파병을 단행, 이라크의 치안 회복 및 질서 유지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번 후세인의 생포는 그러한 선택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믿는다. 제성호 (중앙대 국제법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12. 1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