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행정수도 이전인가 - 송복
	2003-12-15
누굴 위한 행정수도 이전인가 국민 우롱하는 정치적 계산 … 실현성·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치적으로’ 계산된 행위는 정치적으로 실패한다. 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으로도 실패하고 사회적으로도 실패한다. ‘정치적 계산’은 모두 정치적 계략(trick)이고 음모(plot)다. 이 모두 국리민복과는 상관이 없는 철저한 정파(政派)이기주의가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지금의 행정수도 이전계획이 그 대표적 예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말부터가 사기다. 행정만이 아니라 입법 사법까지 총괄하는 정치기구가 고스란히 다 움직여 가려는데, 그것이 어찌 ‘행정’만의 이전이어서 ‘행정수도’ 이전인가. 그것은 바로 국가의 핵을 바꾸는 천도(遷都) 그 자체다. 국운이 걸리는 엄청난 역사(役事)다. 그 역사는 짧게는 통일 이후를 내다봐야 하는 ‘백년의 계획’이고, 길게는 국가의 영속적 발전을 기(期)하는 ‘천년의 계획’이다. 그 계획을 두고 이름부터 국민을 속이고 우롱한다. 거기에 면밀한 검토도 집중된 논의도 깊은 연구도 없다. 더구나 국민적 합의는 생각도 못한다. 측근비리 하나 때문에 헌법에도 없는 대통령 재신임을 묻겠다 하면서, 국가대사 중의 대사를 국민적 총의도 없이 선거공약이라 해서 밀고 나가려 한다면, 그런 선거공약은 무슨 의미가 있고, 그 선거공약을 지키겠다는 정권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막중대사를 다루는 국회의원부터가 포퓰리즘의 전형들이다. 진정으로 수도이전을 지지하는 의원이 몇이나 되는가. 내심으로는 거부하고 말로는 반대하면서 투표에서는 찬성을 한다. 오로지 다음 선거를 위해서다. 학생들 교과서에 나오는 스테이츠맨(statesman)과 폴리티션(politician)의 차이가 그렇게 역력할 수가 없다.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참 정치인은 없고, 표만 계산하는 거짓 정치인·정상배들만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전 인구의 47% 이상이 수도권 한 지역에 집중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지역간 균형발전은 더 이상 용훼(容喙)를 허용치 않는다. 어떻게 하든 ‘센터’를 많이 만들어 인구를 전지역으로 고루 분산시키는 지역적 다중심(多中心) 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다중심 체계를 형성하는 데 지금과 같은 행정수도 이전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겨우 인구 50만명밖에 분산시키지 못하지 않는가. 2200만명이 넘는 수도권 인구에 50만명은 큰 웅덩이의 물 한 바가지에 불과하다. 그 물 한 바가지에 한 나라 정권이 매달리고, 국회의원이 정상배란 오명을 남긴단 말인가. 지역 간 균형발전과 인구분산만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행정부를 갈갈이 나누어 해양수산부는 바다가 있는 부산으로, 문화관광부는 문화도시 광주로, 교육부는 대학이 많은 청주로, 산자부는 대구, 건교부는 춘천이나 강릉, 농림부는 전주, 노동부는 울산, 행자부는 천안, 정통부는 대전으로 보내는 것이 지금의 행정수도 이전계획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현 정권이 시도하는 행정수도 이전은 ‘한 중심’을 ‘다른 한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옮겨놓을 뿐이다. 지역 간 균형발전·다중심체계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주말부부만 양산해 고속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누가 거대한 문화자원을 서울에 두고 가족을 새 도시로 옮겨가려 할 것인가. 더구나 국민들이 더 고통을 당할 것은, 아무 실현성도 실효성도 없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다음 총선에도 정당과 의원후보들이 내뿜는 포퓰리즘의 오물을 온 국민이 뒤집어 쓸 것이라는 것이고, 그 다음 대선에도 뒤집어 쓸 것이라는 것이다. 생각이 있는 정부라면 더 이상 국민을 괴롭히지 말라.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3. 12. 1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