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치상황 눈앞이 캄캄 - 조동근
	2003-12-10
현 정치상황 눈앞이 캄캄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으로 촉발된 정쟁(政爭)은 급기야 대통령의 특검법안 거부와 야당의 등원거부로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새해 예산안 심의와 FTA비준 등 산적한 국정현안이 장기 표류할 위기에 빠졌다. 노 대통령에 이어 국민들의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다. 우리 경제를 비유하면 아직은 최소한의 속도를 유지해야 굴러갈 수 있는 ‘자전거 경제’이다. 2만불 국민소득을 차치하더라도 5% 정도는 성장해야만 노동시장에 신규로 들어오는 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다. 실업이 해소돼야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고를 덜어주려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야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대선자금 수사의 칼날은 제공자인 기업 쪽에 겨눠지고 있다. 경영진이 줄줄이 소환되고 사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경제현장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눈을 밖으로 돌려 보자. 정쟁에 여념이 없던 지난 10월 중순, 중국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 상향조정이라는 낭보(朗報)를 접한다. 한국의 대외 신용도(A3)가 중국(A2)에 추월당하는 순간이다. 물밀 듯 들어오는 외국인투자, 안정적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할 때 중국은 당연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신용등급이 중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도 지난 3분기에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한 민간기관은 내년도 예상 성장률을 4.5%로 상향조정했다. 이는 90년대 후반 신경제 호황기보다 높은 수치이다. 한마디로 강자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쟁으로 경기회복기미 마저 살리지 못하는 우리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선자금 기업수사 확대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기업을 정치가금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발판이 된다면 과도기적 진통을 인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선자금 수사확대는 그다지 생산적으로 보이질 않는다. 무엇보다 대선자금 문제가 왜 ‘이 시점’에서 불거졌는가 하는 점이다. 중간평가 제의에 연이은 대선자금 문제제기는 재신임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판도를 바꾸기 위한 모종의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검찰이 여느 때 보다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도덕성에 기초한 엄정한 수사로 정경유착의 뿌리를 캐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검찰수사로는 줄기만을 자를 수 있을 뿐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포토라인’에서 고개 숙인 많은 유력인사를 보아 왔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노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특검은 검찰이 수사를 회피하거나 수사결과가 미진할 때로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특검법이 국회의원 2/3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됐다는 점 이전에 특검법의 대상이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이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측근비리이기에 검찰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 특검이라는 특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을 다수의 횡포로 치부할 일만도 아니다. 재신임을 물을 만큼 스스로를 내던질 각오였다면 노 대통령은 그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의 정치와 경제패러다임을 다시 짜는 일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리더십을 복원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한국의 리모델링은 다음의 2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정경유착의 뿌리를 캐내는 일이다. 기업의 운명이 시장이 아닌 정부에 의해 좌우돼서는 정경유착이 근절될 수 없다. 따라서 관건은 정부의 재량적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정책이 편의가 아닌 원칙을 추구하게끔 해야 한다. 둘째, 정치발전은 저비용 이전에 고효율의 정치를 정착시키는 것이므로, 모두를 예비 범법자로 만드는 저비용 정치에 대한 ‘신화’를 버려야 한다. 따라서 정당은 ‘정치적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 정치시장에서 자신의 상품인 비전과 정책을 팔 수 있어야 한다. 고효율 정치가 정착될 때 국민들의 부담은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러한 리모델링에 실패하면 한국에 희망은 없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 출처 - 이코노믹 리뷰 제 188호 2003.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