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제대로 이뤄질까 - 정진영
	2003-12-10
정치개혁 제대로 이뤄질까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정치개혁의 골격을 발표했다. 첫째, 비례대표제 의석수를 46석에서 100석으로 확대하면서 전체 국회의원 정수를 273석에서 299석으로 늘렸다. 둘째,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이기 위해 법정 지구당제, 합동연설회, 정당연설회를 폐지하고 정치인의 축의금·부의금 기부와 정당집회 참석자에 대한 교통편의·식사 제공을 금지시켰다. 셋째, 정치자금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만원 이상의 정치자금 지출은 카드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했다. 넷째,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추고, 선거일 전 120일부터 사전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과연 이번에는 정치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대선자금 수사를 계기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점에 비춰볼 때 비교적 낙관적인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이 시간에서 보면 정개협이 제시한 개혁방안의 상당 부분이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이다. 먼저 정개협의 정치개혁 방안 자체의 문제점이다. 국민들에 있어 이번 정치개혁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정치자금과 관련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정치자금이 적게 들고 투명하게 처리되는 정치자금제도의 확립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하지만 정개협 안은 정치자금 문제보다 국회의원의 정수와 지역구 대 전국구 의석비율의 조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역구 인구의 상·하한선을 1대 3 이내로 축소해야 하고, 1인 2표로 비례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법개정 때문에 의석수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국회의원 정수를 증원하고 대통령제 권력구조에 맞지 않는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유지하면서 유럽식 선거제도와 정당체계를 도입하면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 것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논란의 소지가 많은 개혁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이번 정치개혁의 핵심인 정치자금제도 개혁을 어렵게 만들 소지도 있다. 둘째, 타협을 모른 채 충돌로 치닫고 있는 한국정치의 현실 또한 큰 걸림돌이다. 대선자금 수사와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총선을 4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서 정치자금과 관련된 검찰수사나 특검은 불가피하게 정치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서로에게 비수를 겨누면서 총선정국을 주도하기 위한 ‘올인식’ 대결을 벌이고 있다. 도덕적으로 상대방을 정죄하는 이런 분위기에서 정치적 타협은 어렵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정치적 게임의 룰을 바꾸는 문제이고, 타협을 필요로 한다. 서로의 허물을 밝혀 총선에서 승리하려는 네거티브 전략에서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제도 개혁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는 포지티브 전략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금 한국정치는 지극히 위험한 벼랑 끝을 걷고 있다. 기업비자금 수사가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야당이 입은 타격이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특검 도입으로 이어졌으며, 특검 재의결이 이회창 후보를 겨냥한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회창 후보 측의 반격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잖아도 국정혼란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높고 대통령 재신임 문제마저 제기된 상황에서 정치세력들 사이의 극단적 대결은 한국정치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진영 (경희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1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