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수사 기업 옥조이지 말아야 - 조동근
	2003-11-20
대선자금수사 기업 옥조이지 말아야 경지침체와 투자부진 그리고 노사관계 악화 등으로 가뜩이나 취약해진 우리 경제에 대선자금 기업수사 확대라는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대선자금 수사확대는 굴지의 대기업 대부분을 사정권 안에 둠으로써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자연현상으로서의 태풍은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바다에 산소를 공급하고 바다를 정화시키는 생산적 심술궂음이다. 대선자금 태풍도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기업을 정치자금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생산적 심술궂음이 되면 과도기적 진통을 인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선자금 태풍은 그다지 생산적으로 보이질 않는다. 무엇보다도 대선자금 문제가 왜 ‘이 시점’에서 불거졌는가 하는 점이다. 중간평가 제의에 연이은 대선자금 문제제기는 재신임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도를 바꾸기 위한 모종의 정치적 계산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정기관에 의한 쾌도난마식 접근방식도 문제이다. 도덕성에 기초한 검찰의 엄정수사만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정경유착을 척결하기 위한 과거의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인적청산에 치중한 나머지 시스템적 접근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자금 문제의 해법은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장치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선자금 태풍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대선자금 수사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시장경제체제를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기업이 정치권에 자금을 공여하는 동기를 살펴야 한다. 하나는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자금공여이다. 이같은 지대추구행위는 당연위법으로 형사처벌 대상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기업에게 사업권을 배정하던 개발년대를 졸업한 이상 그 의미는 반감되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이른바 ‘보험성 정치자금’이다. 기업의 운명이 시장이 아닌 정부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상존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건은 정부의 재량적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정책이 편의가 아닌 원칙을 추구하게끔 해야 한다. 일찍이 슘페터는 정당을 정치적 기업으로, 유권자를 정치적 소비자로 규정한 바 있다. 우리 정치가 ‘저효율’의 정치로 고착된 데에는 정치인이 ‘정치적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아서 이다. 보험성 자금공여가 일반화된 데에는 특정 기업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길이 사실상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정치자금 제공은 보험을 대신할 수 있다. 정치발전은 저비용 이전에 고효율의 정치를 정착시키는 것이므로 모두를 범법자로 만드는 비현실적인 저비용 정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대선자금 수사가 기업을 옥조여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악재가 돼서는 안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 출처 - 주간조선, 1780호, 2003.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