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외국인력정책 - 김태기
	2003-11-20
겉도는 외국인력정책 정부가 지난 17일부터 외국인 불법체류자 집중 단속을 실시하자 인력대란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력에 의존하던 중소기업체는 물론 식당 등 영세사업자까지 반발하고 있고, 외국인은 외국인대로 목숨을 내던지거나 농성을 통해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외국인 근로자는 종교시설 등에서 정부의 외국인력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반발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외국인력대란은 이미 예고되었는지 모른다. 정책과 현실 간의 괴리, 부처 간의 협조체제 미비, 관리능력 부족 등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31일 법안이 통과된 외국인고용허가제는 그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불법체류자들에게는 광명의 빛과도 같은 조치였다. 그러나 정부가 고용허가제 시행에 따른 보완조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부작용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결국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체는 물론 생계수단으로 구멍가게라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되었다. 고용허가제 시행을 위한 정부의 준비는 행정적인 수준에 머물러 왔고 인력수급 문제는 도외시하였다. 정부가 취한 조치는 단순했다. 불법체류자 자진신고기간을 정하고, 국내에 취업해 취업증명서를 발급받은 외국인근로자에게는 허용기간에 따라 합법적인 체류의 길을 열어주는 정도였다. 국내 체류기간이 4년 이상인 불법체류자들은 일단 출국한 후 다시 입국할 경우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정부는 지난 9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4년 이상 된 불법체류자의 자진출국 기간을 설정하여 출국을 유도하였다.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5일까지 출국 대상자 12만4000명 중 약 2만3000명이 출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0만명에 달하는 불법체류자는 정부의 정책을 비웃기라고 하듯 잠적해버렸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마당에 불법체류자 단속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반발하는 것을 보면 이들마저 한국 법을 경시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외국인력정책이 따로 노는 데 있다. ‘외국인력 도입정책 따로, 외국인력 관리정책 따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력 관련 법 따로, 관행 따로’ 돌아가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외국인들이 국내법을 무시하고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은 정부의 무원칙과 무소신에 그 책임이 있다. 정부는 그동안 중소기업의 인력사정을 고려하여 수 차례에 걸쳐 출국유예조치를 해왔으며, 불법체류자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여왔다.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30만명에 달할 때까지도 별다른 단속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불법체류자의 대규모 출국이나 국내 잠적이 예상되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불법체류 단속으로 중소기업들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자, 제조업 부문에 취업한 근로자는 연말까지 출국을 유예하겠다는 미봉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으로는 외국인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연말까지 출국유예 기간을 연장해 준들 연말에 출국하는 외국인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차제에 외국인력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외국인력의 적정 규모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도입 규모를 정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현실과 동떨어지는 정책은 지양하고, 외국인력의 도입 및 출국 등에 관련된 부처 간의 협력체제도 정비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11. 2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