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통과 특검안 존중을 - 석종현
	2003-11-14
국회통과 특검안 존중을 노무현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대전·충청지역 언론과 합동인터뷰를 갖고 대통령 측근비리의혹 특검법안 및 정치개혁, 재신임 등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검법안에 대해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건은 검찰이 활발하게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는 특검이 바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게 적절하다”며 “시간 조절이 필요하다면 재의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해 대통령측근비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특검법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검의 수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와 충돌하는 문제가 있어 특검의 수사를 그 이후로 늦추기 위해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와 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원활한 검찰수사를 위해, 그리고 국회를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특검의 수사를 늦추기 위한 거부권의 행사라면, 이와 같은 발언은 중대한 정치적 사안의 수사에 결코 중립적일 수 없는 이해당사자의 한 사람인 대통령이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진행중인 검찰수사의 공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측근비리 특검법은 대통령 자신의 측근비리에 대한 언급이 발단이 돼 급기야 재신임정국으로까지 몰고 가게 된 중대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이를 최대한 공정하게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대통령은 검찰수사든 특검수사든 수사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게 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문제의 특검법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가 넘는 수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률안이므로, 이는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헌법정신이지만, 이미 재의결에 충분한 정족수를 넘는 찬성을 얻은 법률안에 대해서까지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국회 견제를 넘어서는 것으로 비난받게 될 염려가 있다. 이미 노 대통령은 여야의 다수 의원들이 반대한 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해 국회를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은 전례가 있다. 이런 전례가 축적돼서는 대통령 자신은 물론 우리 민주헌정의 전도가 밝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특검의 수사를 늦추기 위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는 현재의 검찰수사가 공정하고 원활하다는 전제 아래서만 의미와 설득력을 가지게 될 터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의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통령측근비리에 대한 검찰수사는 매우 진척이 느리고, 국회에서의 특검법안 처리에 맞춰 마지못해 한 발짝씩 떼어놓는 듯한 인상을 주어왔다. 이렇게 미적거리는 지금까지의 검찰수사가 국민에게 공정성의 확신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검찰수사를 위해 특검법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 명분이 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 거부권행사를 강행한다면 재신임정국을 거부권정국으로 몰아가 재신임이라는 뜨거운 문제에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발언은 법적 이슈와 정치적 이슈를 구별하지 않은 것으로 문제가 있다. 특검법안을 제정할 것인지 여부를 국회가 판단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지만, 국회가 의결을 거친 현재에는 공포절차만 남아 있고, 그것은 법적 문제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대통령의 권한행사로 법적 문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거부권 행사의 명분 만들기를 위한 대통령의 언행은 정치적인 것이다. 거부권 행사라는 법적 문제에 대해 정치적인 접근을 시도하면 그것은 법을 존중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법을 존중하지 아니하면 법치는 유명무실하게 되는데, 대통령의 권위도 모두 법에서 나오는 것임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석종현 (단국대 법학과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3. 11. 1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