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ㆍ盧후보 '성장' '분배' 정책 모두 문제있다 - 유한수
	2002-05-27
李·盧후보 '성장' '분배' 정책 모두 문제있다 올해 대선은 사상 처음으로 정책대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나라당·민주당의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간 색깔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두 후보의 차이 중 하나는 성장우선이냐 분배우선이냐 하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앞으로 20년간 매년 6％ 정도의 고도성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고, 노무현 후보는 성장을 중시하되 분배를 통해 사회적 형평을 이루자는 것이다. 통계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분배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국민의 70％ 이상이 자신은 중산층이라고 답변한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우리나라의 분배구조가 왜곡돼 있다고 주장하면 수긍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왜 그럴까. 첫째, 잘사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부를 쌓지 않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경유착을 했든, 탈세를 했든 무언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다고 생각들 하고 있다. 둘째,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지극히 인색하고, 오로지 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한다. 나라 전체보다 내자식 경쟁력 키우기에만 관심이 있다. 셋째, 경제가 성장하면 계층간 소득격차가 커지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한 다리 건너면 다 통하는 사회에서 누가 부자가 되면 ‘배아픈’ 감정이 생기게 된다. 이론상 아무리 분배가 공정해도 국민들이 무언가 불만을 느낀다면 정치적 문제가 된다. 미국의 경우 경기 호황기에는 모든 계층의 소득이 비슷한 비율로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호황기에는 모두가 불만이 없다. 그러나 오일쇼크 등으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소득분배도 불공평해진다. 경제위기나 불황기에 최상위계층은 무언가 한몫을 잡아 소득이 중간계층보다 갑자기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하류계층은 소득이 하락한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란 이후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벤처다 게이트다 해서 일부 특권층이 큰돈을 벌었지만, 정리해고 등으로 직장을 떠난 계층은 하류층으로 전락했다. 중산층이 몰락했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바로 이런 현상 때문에 “분배에 중점을 두겠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고 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두가 불만이 없자면 경기 호황이 정답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분배를 하자면 잘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내놓아야 할까. 보통 상위 5％의 계층을 고소득층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분석을 해보면 고소득계층 간에도 엄청난 소득격차가 있다. 고소득계층 중 상위 1％가 나머지 99％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상위 5％ 중 바닥권은 중산층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들보고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펄쩍 뛸 것이다. 환란 등 특수한 여건에서 소득배분이 왜곡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소득분배란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면서 그에 따른 혜택이 어떻게 나뉘느냐 하는 문제이다. 현재 못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것은 복지정책이지, 분배정책이 아니다.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든지, 가진 자들이 더 내놓아 도와주는 방식이라면 매년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 땜질식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교육이나 취업 등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 소득계층간 이동이 높다면 어느 한 해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평생소득의 분배는 공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선후보들의 성장과 분배정책은 소득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바로 교육·경쟁조건·세제 등이다. 따라서 모두 단기적 인기영합주의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의 수준인지, 아니면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유한수 (비전@한국 공동대표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이코노미스트 2002. 5 28호 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