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엔 법으로 맞서라 - 류동길
	2003-11-11
화염병엔 법으로 맞서라 지난 일요일 저녁에 발생한 서울 도심의 폭력시위는 충격적이다. 700여 개의 화염병이 터져 서울은 불바다를 이뤘다.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야 할 화염병이 불을 뿜는 걸 보면 한국의 경제시계는 분명 거꾸로 돌고 있다. 시위를 막는 경찰에게 금속 볼트·너트를 새총으로 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시위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해야 옳다. 시위에 나선 민노총 소속 노동자와 경찰의 유혈 충돌도 안타깝다. 길 가다가 다친 시민들은 누구에게 울분을 토해야 하는가. 폭력 시위가 몰고 올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가 올해 초 일어난 몇몇 파업을 잘못 처리한 것이 계속되는 노사갈등의 원인이 됐으며 노동계의 잇따른 승리로 인해 한국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악화될 것이다.” 한국은 ‘죽도록 파업?(Striking to Death?)’이라는 제목을 붙인 지난 9월 8일자 ‘타임’지의 기사다. 이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외국의 일반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극심한 노사분규로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할지를 고민하는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적지 않다. 국내 기업도 기업하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데 외국인 투자 기업이 한국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 심각한 청년 실업은 단순히 경기가 나빠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성장 둔화, 산업구조 변화, 정규직의 높은 고용 보호, 경쟁력 상실 등으로 청년 실업은 지속돼 그런 상태가 고착될 가능성마저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무서운 전망이다. 도심 거리를 불바다로 만드는 노조를 보고 한국을 찾을 외국 자본이 있겠는가. 언젠가 한·미 재계회의에 다녀온 어느 노조 지도자는 미국에서 “한국 노사관계를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이번 사태는 한국 노조의 강성 이미지를 다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가 왜 일어났는가. 노동자대회를 주관한 민노총에 따르면 손해배상 가압류제도 개선,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동 탄압 중단, 이라크 파병·국민연금 개악 등 반개혁정책의 중단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노총은 정부가 이런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12일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정부로부터 항복이라도 받겠다는 태세다. 이를 한번 따져보자. 손해배상 가압류 제도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항하기 위한 기업의 자구(自救)행위다. 하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사법부가 할 일이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또 어떤가.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러도 해고할 수 없다고 하니 기업은 비정규직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노동 탄압 중단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과거 합법적인 노동운동이 불가능했던 시절,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 또는 탄압 받는 약자의 정당한 항거라고 인식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노동 탄압을 한다고 한다. 정부와 기업이 오히려 강성 노조에 휘둘리고 있다는 게 일반의 인식인데도 말이다. 합법적인 파업도 근로조건과 관련된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이라크 파병 반대는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노조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해도 폭력 등 불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민노총은 화염병 시위를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런 변명으로 노동운동을 하면 국민적 지지를 잃게 된다. 수백 개의 화염병을 길을 걷다가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은 노사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그게 잘 안 될 때에는 법과 원칙이 잣대다. 법이 잘못돼 있으면 고치는 노력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노조와 경영진의 시각 차이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건 정부가 엄격하게 법과 원칙을 앞세워 노사 모두의 불법을 다스리는 것이다. 불법과 폭력행위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적당히 덮고 넘어가면 이런 일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불법이 자행되고 국력이 소모되면 경제는 죽는다. 정치권은 물론, 정부·국민·노사가 힘을 합해도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경영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이 먹고 살기 위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노사 모두가 타도해야 할 적일 수 없지 않은가.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11. 1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