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수사와 검찰 중립 - 김석준
	2003-11-10
정치자금 수사와 검찰 중립 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정치권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 씨의 SK 비자금 수수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되고 이 일로 대통령이 재신임을 걸 때까지만 해도 야권이 대통령을 몰아세우는 입장이었다. 야권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요구했고 대통령은 그것을 받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대선자금 수수 의혹을 검찰에서 인정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야권이 수세로,여권은 공세로 전환됐다. 야권의 정보와 전략 부재가 여권의 치밀한 공세의 효과를 극대화한 셈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대선 후보의 대국민 사과와 최병렬 대표의 정치 개혁 선언이 적시에 있었으나 전세 반전에는 역부족이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몇 달 전부터 양측의 비리 사실을 사전 보고받고 재신임과 사정 정국을 면밀하게 준비한 대로 착착 진행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한다. 역대 정부는 출범 이후 예외 없이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사정의 칼을 휘둘렀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까지 백담사나 교도소로 보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환란으로 경제 문제에 매달리면서도 ‘안풍’ ‘세풍’ ‘언풍‘으로 국가정보원,국세청,언론,야당 및 반대 세력을 길들였다. 그 전통을 노무현 대통령도 잇는 듯하다.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사정의 칼이 정치권은 물론 기업인에게까지 향하고 있다. 기존 정치권을 모두 부패한 집단으로 몰고 새롭게 출범한 ‘정신적인 여당’이 그 틈을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4류 정치인들의 싸움판’에 그 분야 세계 1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들까지 희생의 제물로 올려질 모양이다. 검찰도 거대한 소용돌이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좁게 보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듯하나 넓게 보면 정치권이 일으킨 폭풍에 휩쓸릴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 국민은 사정이 더 이상 정치권의 정략적인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먼저 부패 척결은 과거에 대한 처벌 위주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방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난 16대 대선과 16대 총선 자금 모두를 대상으로 하되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정당,돈을 준 기업 모두 참여하는 성스러운 고해성사로 매듭지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대표가 시차를 두고 주장한 것을 수용해야 한다. 대통령도 몇 달 전의 제안이 지금은 효력이 없다고 꼬리 내릴 일이 아니다. 검찰이든 특검이든 국민이 신뢰하는 주체가 그 일을 맡아야 한다. 국회에서는 이번에 정치자금을 고백한 경우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대신 은닉하거나 거짓 고백할 경우에는 더욱 가혹한 처벌을 받도록 한다. 엄정 중립기관이 내용을 검증하고 그 결과를 국민이 신뢰토록 한다. 이번 정치권 사정은 제도 개혁과 인적 쇄신으로 이어져 정치 개혁이 열매 맺도록 해야 한다. 이미 최병렬 대표는 가히 혁명적인 개혁 방안을 어렵게 제시했다. 지구당 폐지와 중앙당 축소,완전 선거공영제,기업자금 직접 수수 근절,정치자금 투명화,총선 후보 대폭 교체와 전국구 의원 전원 교체,경조사 축의금 금지 등 모든 내용이 파격적인 것들이다. 평소 같으면 하나하나가 큼직한 내용이 될 것들이다.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은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라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내가 하면 개혁인데 남이 하면 정략적이라는 태도는 버리자.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은 태우지 말아야 한다. 8년 전 노태우 비자금 수사로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 소환을 받고 경제가 얼어붙어 IMF 환란으로 직행했던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 검찰이 마니 풀리테 운동으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부패와의 전쟁’을 했으나 역풍에 시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국회의원 수백명이 구속되고 40년 장기 집권 기민당이 자진 해산했으며 연정 참여 정당들도 모두 몰락했다. 단기적으로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몰락하고 경제가 불안해져 새로 등장한 좌파 연정에 실망한 국민은 ‘재벌 정권’이라고 쫓아낸 전 총리에게 2001년 총선에서 다시 정권을 맡겼다. 부패는 근절되지 않고 경제는 추락했다. 지금 사정 바람을 일으켜 포퓰리즘이 검찰,정당,국회 등을 무력화한다면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노사모’와 ‘국민의 힘’이 나설 때가 아니다. 지금은 국민이 나서서 의회민주주의를 향한 정치 개혁을 차분히 추진할 때다. 김석준 (이화여대 행정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국민일보 2003. 11. 7 칼럼